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현진 Jun 16. 2022

2022년 6월 16일 목요일

두부가 갑작스레 죽은 후 가장 기뻤던 일은

두두가 자기 혼자 고양이인 상황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두두는 겁쟁이지만 두부가 별 이유 없이 궁둥이를 때리거나 시비를 걸어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리를 피할 뿐이었고, 서로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아도 크게 싸우거나 싫어하지는 않아 평화로운 날들이라 생각했었지만 사실 두두는 애정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갑자기 출근해 하루종일 집은 비어 있고 두부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그 와중에 이사로 지내던 공간까지 바뀌는 바람에 병이 나고 한참 병원에 다녀야했지만, 일단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니 두두는 놀랍도록 잘 먹고 잘 자고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많고 그리고 지금 이 생활(사람 하나 고양이 하나)이 만족스럽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응, 이 집에 슬퍼하는 존재는 하나면 충분하다.

이 집이 슬픔에 잠기지 않아 기쁘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조금 더 정확하게 두두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 기분이다. 물론 처음 왔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그건 약한 존재에 대한 이타심에 가까운 애정이었다면 지금은 순수하게 '두두'라는 존재를 향한 단 하나의 사랑이라는 형태의 애정.

평등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모두 다른 형태의 애정이라고, 그래서 비교할 수 없다고.

두부는 이제 없고 그래서 두두가 그 대신이라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두부를 향한 애정과 두두를 향한 애정은 처음부터 그 모양과 온도가 달랐기 때문에 서로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가족이 늘어날 때보다 줄어들 때 조금 더 사랑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는 기분이다.

나는 다른 형태로 모두를 사랑해요.


이전 09화 2022년 5월 4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