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마녀 2025 소녀전 10/10-12

by 백현진

항상 교실 구석에 벽처럼 앉아 있던 학생 시절, 나는 방과후 활동 부서도 독서토론이나 음악감상부 수예부 같은 곳에 들어가 (이 세 부서 모두 실질적인 활동은 없고 자습을 시킴) 조용히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 추첨제로 전교에서 나 포함 단 두 명만 버스를 20분 이상 타야 하는 먼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취향과 상관없이 입학 후 얼마간은 함께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가 무조건 만화부에 들어야 한다며 아무 관심 없던 내 손을 끌어 함께 처음으로 무언가 활동을 하는 부서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실상 크게 내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늘 심드렁하게 앉아서 깜짝 놀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보며, 저 아이는 나중에 만화가가 되는 걸까 생각하곤 했다. 학교 축제 때는 굿즈를 만들 그림을 하나씩 무조건 내야 한다고 해서 나는 펜으로 나를 닮은 단발머리 소녀를 한 장 그렸는데, 부스에 가 보니 내가 펜으로 한 올 한 올 그린 머리카락이 붓으로 까맣게 먹칠이 되어있었다. 소녀들의 머리카락에 하나하나 선을 긋다 보니 문득 이 일이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소녀들을 그리고 있었구나, 그때에도 넓은 면은 깔끔하게 먹칠을 하라던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고 선을 긋고 있었구나. 그때 엄청나게 충격받았었지, 내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내 그림을 멋대로 수정한 것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온갖 기억이 다 튀어나온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잊고 싶었던 기억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기억 모두 촘촘한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잘게 부서지고 흩뿌려진다. 그렇게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소녀들은 모두 나의 예상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비겁하고 나약한 나와 달리 내 소녀들은 모두 강인하고 다정하다. 살면서 내가 만난 모든 소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펑크마녀 2025소녀전 10/10-12 낮12:00-오후8:00

서울 종로수 북촌로5나길 83-1 계단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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