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얼굴도 처음 보는 얼굴도 입을 열면 9년, 10년, 12년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다. 초등학생이 성인이 된 시간. 고등학생이 서른이 된 시간. 학생이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인이 된 시간. 이십 대가 사십 대가 된 시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시간. 어린 고양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버린 시간. 그 사람들을 본다. 주말 시간을 들여 와준 사람들, 일정을 쪼개 들른 사람들, 소중한 직장인의 연차를 여기에 써준 사람들. 내 인형을 달고 온 사람들, 그간 모은 책과 굿즈를 보여주는 사람들. 내가 그은 선 하나하나를 골똘히 보는 사람들, 인형의 배를 하염없이 쓰다듬는 사람들. 줄 수 있는 건 따뜻한 커피 정도밖에 없는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빨리 끓지 않는 전기포트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다. 커피를 내리면서 한 사람에게 할당된 애정의 총량에 대해 생각한다. 대부분 기본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일정 용량의 애정을 나는 받지 못한 것 같았는데, 어느 누구에게 받든 결국 그 총량은 채워지는 것이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내게 할당된 애정은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었구나. 가늘게 그어진 선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고 있는 그 얼굴이, 앉을 곳도 없어 잔뜩 쪼그린 채 방명록을 쓰고 있는 그 등이, 잔에 담긴 커피를 받아 드는 그 해사한 미소가 애정이 아닐 리가 없다. 쏟아지는 빗속에 기차를 타고 이 작은 전시를 보러 일부러 온 그 마음이, 내일이 시험인데 두 시간이 넘게 지하철을 타고 온, 아침에 마감을 끝내고 비몽사몽 미로 같은 골목을 찾아온, 택시를 타고 달려 온 그 마음들이 사랑이 아닐 리 없다. 언젠가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어른의 수많은 사정으로 좀처럼 보기 힘들어지거나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해도 내게 머물렀던 그 다정함들은
오늘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