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없는

by 백현진

내 앞에 빈자리가 났지만 바로 다음 환승역에서 내리기 때문에 앉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앉으려 하다가 자리를 양보하길래 노인이나 임산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둘 다 아니었고 그냥 젊은 사람이었다. 자리를 양보한 사람도 다음 역에서 내리나 보다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조금 머리를 갸웃거리며 내리려는데 덜 마른 머리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난다. 자리를 양보받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젖어있다. 습도가 높은 건가, 옆을 스쳐 지나는 이들의 모든 체취가 강하게 느껴진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역시 습도가 높은 모양이다. 읽고 있던 책에서 강수확률이 30%라 작은 우산을 챙겼다는 구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집을 나설 때 비가 내리고 있지 않으면 좀처럼 우산을 챙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근 변덕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일주일 내내 가는 곳마다 우산을 하나씩 받아오는 일이 있고 나서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약간 의문이 일었다. 그 이후로 멀리 갈 때면 일기예보를 켜보기는 하지만 강수확률이 80% 정도가 아니면 여전히 우산을 챙기지는 않는다. 애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혹은 익숙함 또는 습관?

견디기 힘든 게 많은 나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 버튼 하나 눌러보기만 하면 확인이 가능한데 그걸 도통 볼 생각도 없이 빗속을 걸어와 ‘갑자기 비가 와’라고 말하는 나를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생각한다. 어쩌면 내 친구들도 그런 사람이지만 그런 나를 견뎌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애정일까 그저 단념일까 그냥 습관일까. 싫은 게 많은 나는 그때마다 생각한다, 타인도 모두 나를 견뎌주고 있다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걸 견딜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나도 이제 어른이라 나름 사회인의 얼굴을 갖추었는데 자주 비에 흘려버리는 걸까,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구나 영원히 그 위의 가면을 잘 닦고 가꾸며 조금 더 견고하게 고쳐 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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