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없는 잠 속에서, 얼굴에 닿는 보송 발에 눈을 떴다. 고양이가 배가 고픈지 털복숭이 발로 내 얼굴을 연신 두드리고 있다. 어둠을 더듬어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
졸음을 담은 채로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덜어주고. 하루 8시간 수면을 채우려고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는데 새벽마다 고양이로 인해 여지없이 깨지는 계획에 다소, 얄미운 마음이 들다가도 복슬한 얼굴을 파묻고 와구와구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그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몇 번이나 쓰다듬어 준 뒤 다시 침대에 누워 베개 맡에 둔 책을 읽는다. 암흑 속에 밝은 별이 총총 떠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밝음이라 부를 것인가, 어둠이라 부를 것인가 -여름철 대삼각형 이주혜- 그건, 당연히 밝음 아닌가?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아주 오래 어둠 속에 있었던-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어둠에
침잠되어 있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너무 오래
어둠에 파묻혀 있어 그것이 어둠인지도, 거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오히려 그 어둠에 집어삼켜져 영영 어둠이 되어버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영원한 어둠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밝음 속에 서 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행복의 기준 그런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가난하고 나이 들어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고. 고양이 한 마리 끼고 단칸방에 살고 있는 그런 납작한 생활일지라도.
내 마음에는 이제 어둠이 없다. 오랜 시간을 거쳐 여러 어둠을 지나 나의 두발로 그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에. 내게는 사위를 물들인 어둠의 부피보다도 총총 빛나는 한 두 개의 점 같은 밝음이 크게 보인다. 새벽 나를 두드려 깨우는 고양이를 끝없이 쓰다듬는 일이 에스키모 같은 차림으로 영하의 날씨에 조조영화를 보러 찬바람을 맞으며 끝없이 걷는 일이 가정용 머신기로 엉성하게 카페라떼에 웃는 얼굴을 그려 넣는 일이 안 될 걸 알면서도 돌아오는 길 삼천 원 치 복권을 사는 일이. 그 모든 먼지 같은 일들이 내게는 밝음이다. 내게 이런 미래가 있으리라고는.
어둠 속에서는 알지 못했다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가지지 않았다.
언제든 사위가 어둠에 파묻히면 다시 달려야 하니까 힘껏 도망쳐야 하니까. 그러려면 고양이 한 마리 정도가 최선이니까. 그런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겨우 잠깐 평지에 다다랐다. 영원히 평지만을 걸을 수는 없겠지만 도망쳐 보았으니까, 전부 버려 보았으니까.
또다시 어둠이 닥친다 해도 밝음으로 향할 자신이 있더. 그러므로 나는 그냥,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계속.
나의 가장 든든한 내 편은 나다. 아무도 없어도 내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또 맞이해야지.
환한 빛 속에서.
혹여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전부 버리고 도망쳐 다시 밝음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