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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Aug 21. 2020

아내의 사과

_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기

“오빠, 내 마음이야.”



어디서 났는지 아내는 불쑥 사과 한 알을 내밀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어." 하고 대충 대답한 뒤 사과를 식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러자 아내는 다급한 듯 한 번 더, "오빠, 내 마음이라니까?"라며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얘가 왜 이러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는 답답한 듯,



“아이참. 사과잖아. 내 사과 받아달라구.”






어제 아침 아내와 나 사이에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감정이 상해 있었다. 으레 그렇듯 먼저 시작한 사람은 있어도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두 사람 다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그런 말다툼이었다. 아내를 직장까지 데려다주는 차 안.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던 중 결국 아내가 나에게 먼저 사과했지만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의 회사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내를 내려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뿌듯했냐고? 대답은, 전혀.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게 나도 잘한 거 하나 없으면서 온갖 역정이란 역정은 나 혼자서 다 냈으니…. 자존심. 못난 자존심. 늘 이놈의 자존심_생각해 보면 이건 자존심도 뭣도 아니다. 그냥 옹졸함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_이 문제다.



싸울 일도 잘 없지만 한 번 싸움이 시작되면 나는 좀체 물러서는 법이 없다. 누구라도 먼저 사과하면 끝날 일을 먼저 사과라도 했다간 큰일이라도 나는 양, 기어이 상대로부터 미안하단 소리를 먼저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돌이켜 보면 그런 식으로 관계도 여럿 망가뜨렸다. 그 흔한 사과 한 마디를 못 해서 상대방을 코너까지 몰아붙이고, 모진 말로 상처 주곤 했으니까.



사과는 늘 어려운 일이다. 사과를 하려면 먼저 내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내 옹졸한 기준 속 나는 웬만하면 옳다. 그런 탓에 연애할 때부터 아내는 늘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고, 나는 그 손을 못 이기는 척 잡아 왔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차 안에서도, 차에서 내릴 때도, 일하는 중에도,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먼저 미안하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 있을 일도 아닌데 혼자 꽁해가지구선, 불쑥 아내가 사과를 건넬 때까지도 입을 꾹 닫구선 살가운 말 한 마디 먼저 건네지 못했다. 몇 시간을 밖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사람한테.






이튿날 아침 어제 받은 사과가 생각나 냉장고에서 꺼내 다시 보니 아직 제철을 맞지 못한 파란 풋사과였다. 사각사각 깎아 한 조각 씹어 보니, 아직 떫다. 그러나 입 안 가득 풋풋한 사과향이 퍼진다. 꼭 잘 익어야지만 사과는 아닐 것이다. 설익으면 설익은 대로 저만의 맛과 향이 있다. 예쁘게 깎인 절반의 사과를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출근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긴다.      



“냉장고에 사과 깎아 놨어. 사과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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