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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일등칸 후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by 겨울딸기

2018년 11월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다. 비록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짧은(시베리아 횡단 열차 전체 경로와 견주면) 여행이지만 설렌다. 한겨울이라 푸른 평원은 못 보겠지만 빽빽한 자작나무 숲과 끝이 안 보이는 평원을 볼 수 있으리라... 밤 9시 출발인데 부지런한 남편 덕에 한 여섯 시쯤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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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는 한국에 있을 때 예매를 했다. 러시아 철도청(https://pass.rzd.ru/main-pass/public/en) 들어가서 회원가입 -> 로그인 -> 출발/도착지 클릭 -> 날짜 -> timetable 클릭하면 좌석 선택할 수 있다. 나는 화장실에 아주 아주 예민해서 화장실이 있는 쿠페, 일등석으로 예매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남편이랑 두 명 예매하니 할인받아 53만 원인가 했던 거 같다.(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비싸긴 했지만 언제 또 타보랴 해서 돈 좀 썼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예매할 때 인쇄한 예매 바우처를 티켓 창구로 가서 실물 티켓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판매원이 다른 말 없이 손짓으로 일 층으로 가란다. 참 무뚝뚝하고 불친절, 러시아말로 뭐라 뭐라 하니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그냥 가라는 뜻은 알겠어서 기차를 탈 수 있는 일 층 일 번 트랙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표를 바꾸는 건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트랙으로 나가는 문 앞에 할아버지 경비원이 있어서 번역기 돌려가며 물었다. 몇 시부터 기차를 타냐고, 그분 말씀은 그저 9시란다. 기차가 9시에 떠나는데 9시에 타란다. 참 나 원... 그분 말은 추운데 뭐하러 미리 나가냐는 뜻 같다. 알겠다고 하고 다시 위층 식당으로 갔다.(여기 식당 이름이 참 재미있다. 번역하면 '통곡하지 마' 뭐 그쯤 되는 거 같다. 트레이 가지고 가서 내가 먹고 싶은 거 골라 주문해서 먹는 러시아 대중식당이다. 프랜차이즈라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도 있다. 맛은 먹을 만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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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바비큐 한 조각과 빈 삶은 거, 블루베리 주스를 주문하고, 남편은 메밀밥과 함께 먹을 고기 조림을 주문했다. 거기에 커피 한 잔, 역시 주문원이 불친절하다. 뭘 물어도 대답도 않고,,, 못됐다. 식당 안에 아줌마 둘이 앉아 있는데 한국 사람이 틀림없다. 우선 우리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짐을 챙겨 나가려는 아줌마한테 한국분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때부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 두 분이 블라디와 하바롭을 여행하고 있단다. 그분은 갈 때는 밤기차를 타고, 네 사람이 들어가는 2등 칸을 예약했단다. 블라디로 올 땐 비행기를 타기로 했단다. 그분들이 탈 기차는 6번 칸, 우리는 맨 뒤 18번 칸이다.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옆 칸이었으면 오고 가고 구경하려고 했는데 너무 떨어져 있어서 기차 안에서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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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오르기 전 역무원이 여권 검사를 한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예매 명단과 여권을 맞춰본 후 이상 없으니 올라가란다. 1등 칸에는 안내원이 있어서 우리를 3번 방으로 안내했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니 환영 스낵이 테이블 위에 한 가득이다. 역무원이 다시 와서 실내 기기 작동법을 설명한다. 러시아말로... 물론 한 두 단어 영어를 섞어가면서. 근데 기본적으로 영어를 할 줄 몰라 러시아말로 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눈치껏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끝나고 돌아간 후 다시 와서 주스 네 병을 준다. 그리고 조식 메뉴를 선택하란다. 예매할 때 분명히 다 선택하고 저장했는데... 블린과 치즈를 내일 아침 7시 30분에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돌아가고 난 뒤 또 곧이어 선물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기념품 판매였다. 처음에 그냥 준다는 건가 순간 착각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아니라고 노땡큐라고 하니 웃으며 돌아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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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칸이 맨 뒤에 있어서 우리 칸 복도로는 외부인이 들어오질 못한다. 조용하고 안전하긴 했지만 구경 삼아 식당칸 갈 때는 한참을 가야 했다. 식당칸 가는 동안 다인실도 구경하고 4인실도 봤는데 만약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개방된 다인실이다. 문을 닫을 수 있는 4인실, 2인실은 오히려 안전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좌석을 선택할 때 여성 전용을 선택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 하고 문을 닫아 놓으니 냄새가 장난이 아닌 거 같았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얼마나 냄새가 심하던지. 겨울이라 창문을 다 닫아놔서 더 심했던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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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기 전만 해도 드디어 나도 영화에서나 보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구나 기대가 컸는데 보이는 게 없다. 밤 기차인 데다 날이 흐려 그냥 검다. 어쩌다 노란색 가로등 불빛에 주위가 희미하게 드러났지만 기차가 빨리 달려 그마저도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고 잠은 안 오고 밖은 검고 남편은 맥주 한 잔 마시고 곯아떨어지고... 이럴 수가... 지루했다. 가을에 예매할 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새벽녘 풍경이 그림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땐 여름이었나 보다. 해가 일찍 뜬 게 분명하다. 근데 지금은 한겨울이라 해 뜨는 시각이 거의 8시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 흐린 날이어서 8시가 되어도 칙칙한 회색이다. 날이 좋았다면 창밖으로 해 뜨는 건 아니지만 새벽노을이라도 감상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무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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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기 한 시간 전인가 아침을 가져다주었다. 블린과 생선알 절임과 치즈, 햄, 과일이 나왔다. 사진처럼 성의 없는 맛이다. 일등칸 전담 안내원들이 직접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거 같다. 일등칸에서 밥 먹었다는 기념 정도로 추억하면 충분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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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또 한 번 타보겠냐고 묻는다면 낮이 긴 한 여름에 블라디에서 하바롭이나 바이칼 호수까지는 가보고 싶다. 남편이 오래전에 블라디에서 모스크바까지 열차를 탄 적이 있는데 많이 지루했다고 했다. 그러나 바이칼은 감동적이어서 그 정도 여정이면 탈 수 있단다. 그런데 난 화장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요금이 장난이 아니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11시간 덜컹거리며 달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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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칸 내부 사진 몇 장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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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용품도 따로 하나씩 파우치에 담아 준다. 기념품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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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파 등받이를 앞으로 당기면 침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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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크기라 두 사람이 자기에도 좁지 않다. 기차가 덜컹거려서 불편하긴 했지만 침대나 침구는 푹신하고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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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위 벽에 있는 손잡이를 앞으로 당기면 이층 침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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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 침대는 아래층 것보다 약간 작다. 그렇지만 남자가 누워 자기에 충분하다. 다인실 침대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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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열면 왼쪽에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다. 커튼을 치고 샤워를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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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맞은편에는 변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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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도 있는데 별로 흥미롭지는 않았다. 러시아 말로 나오는 만화나 역사 다큐멘터리다.


***기차 좌석을 예매할 때 4인실이나 2인실(문이 따로 있는 칸)인 경우 여성 전용, 남성 전용, 혼용 칸 이렇게 세 가지 옵션이 있다. 만약 혼자나 둘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다면 반드시 개방적인 다인실을 예매할 것을 권장한다. 문을 닫으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기 힘드니까.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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