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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Feb 07. 2023

[영화 리뷰]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오랜만에 마음에 꼭 드는 영화 한 편을 찾았다.

생물학자이자 소설가인 델리아 오언스의 원작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리즈 위더스푼이 연출하고, 테일러 스위프트가 ost작업에 참여한 영화이다.

제목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 현재 넷플릭스에서 제공되고 있으니, 극장에서 놓쳤다면 꼭 보시기를!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그녀들이 처한 삶을 얼마나 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낼지.

삶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어떤 소설을 써 나갈지 말이다.

특별히 그 주인공의 성장 배경이 독특하거나, 처한 상황이 위태로울 때는 더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여성이 생태계적 차원이나 힘의 논리에서는 약자이기 때문에,

그녀들이 거대 질서인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아픔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들은 감동을 준다.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다. 여성의 삶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지니고, 언제까지나 일관된 태도로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녀들이 여성이기 이전에,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인적이 드문 36만 평의 야생 습지에서 어린 시절부터 홀로 자라온 가련한 여주인공 카야.

이름부터 참으로 특별하다. '카야.'

  억새풀과 새들이 가득한 드넓은 습지에서 매일 배를 타고 습지를 탐험하며 홀로 살아가는 카야.  

  사람들은 야생적인 자연 속에서 문명을 거부한 채 홀로 은둔하며 살아가는 그녀를 '습지 소녀'라 칭하며 배척하고 수군거리고 따돌린다. (그저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뿐인데,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되어 외톨이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다. )


  그녀가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그녀가 평생을 연구한 대상이며 삶의 마지막까지 지켜내고 싶어 했던 자연 그 자체인 '습지'. '습지'에 관해 작가가 책에서 묘사한 구절을 잠시 인용하겠다.

"인생 막장에 다다랐거나 도망자가 아니라면 수렁에 판잣집을 짓고 살 리가 없다.
  초창기 정착민들은 노스캐롤라이나 습지를 '대서양의 공동묘지'라 불렀다.
  육지다운 육지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쳐 계속 항해했고
  악명 높은 습지는 반란선언, 조난자, 빚쟁이 전쟁이나 세금이나 법을 피해 도망친 떨거지들을 그물처럼 건져냈다."


책에서는 습지가 무법자들을 그물처럼 건져냈다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모든 소외된 이들을 구원한 기적의 공간은 아니었을까. 삶이 꿈틀대는 생동감 있는 공간이며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근원적인 공간말이다.


또 다른 구절에서는 '습지'에는 "진흙에서 허우적거리는 가재. 새우. 굴. 통통한 거위. 땅에도 물에도 살아있는 것들이 겹겹이 쌓여 꿈틀거렸다. "라고 묘사하며 습지가 지닌 생태학적 가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카야 역시도 습지에서 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평안함, 자연스러운 것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습지 생태계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습지는 그녀에게 삶의 배경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그녀가 사람에게 상처받고 위태로울 때마다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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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제시된다.

하나는 카야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그녀가 사랑하는 테이트를 만나 사랑을 이루는 로맨스적 내용으로, 서정적인 영상미를 통해 아름답게 흘러간다.

둘째는 어린 시절부터 버려진 채로 마을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며 살아온 카야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살인자로 지목되고 죄를 심판받는 법정에서 치르는 고통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 차분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정 공방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제시된다.


등장인물로는 카야를 둘러싼 두 남성이 등장한다.

카야를 사랑하며 그녀를 마지막까지 있는 그대로 존중했던 테이트와

카야를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폭력을 휘두른 체이스.


작가가 의도한 것이 행복한 결말이라면 그녀는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낸 것 같다.

마지막에 습지에서 죽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생애를 마감하는 장면,

그리고 그녀의 자연스러운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 주는 사랑하는 남편 테이트.



영화가 끝나가면서 카야가 작성했던 마지막 책을 들춰보는 장면이 나오며

그녀가 생전에 그렸던 무수한 새의 깃털, 조개껍질, 습지의 식물들, 버섯들, 꽃들... 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너무 세밀하고 아름다웠다.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던 것을 누군가가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주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픽션이라고 한다. 하지만 야생 생태계를 연구하며 평생을 자연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아마 다음번에 여행 계획에는 '노스캐롤라이나 습지'를 여행지 목록으로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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