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에서 벗어나 가끔 나만의 꿀같은 자유 시간이 부여될 때마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시도하는 힐링의 패턴이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몸과 의식을 이끌어 당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소들은 대개 찜질방이나 서점이나 꽃집이나 문구점 등이다.
최근에는 김소영 아나운서가 운영한다는 광교에 위치한 '책발전소'에도 다녀왔다. 책을 발전시키는 곳이란 어떤 정체성을 지녔을까? 궁금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책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책을 옆에 놓고 관심 갖게 하는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공간일 테고, 나처럼 이책 저책 여러 분야를 기웃거리며 책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신상 책들과 독립 서적들, 그리고 오래된 고전들 사이에서 어떤 책을 골라 읽을지 행복하고 사치스런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 풍요로운' 공간이었다.
가르쳐야한다는 직업적 본분을 떠나서, 내가 요즘 가장 즐겨보는 책들은 '심리학이나 철학'류의 서적들이다.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이라는 책을 골라서 연필로 정성스레 밑줄 그으며 읽어봤다. 그렇다. 나는 내 삶에 타인과는 다른 '나만의 삶의 격'이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나만의 고유한 어떤 정체성을 지닌 분위기, 느낌, 문체. 그런 것들. 지적이고 고차원적이며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어떤 삶의 잡히지 않는 '목적'같은 것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누구나 살다보면 겪게되는 '무력적이고 굴욕적인 순간'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 30대에 보낸 시간들에 주로 이런 잊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감히 누구라도 나의 격과 정체성, 존엄을 훼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고통스러워하거나 후회하면서 보내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
작가는 '존엄'이 무엇인가에 대해 불명확하지만 논리적으로 접근해 개념적 설명을 시도했다. 예전같았으면 쓸모도 없는 '철학' 따위 무엇하러 배우나, 이런 무모한 생각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살아온 경력이 한 살 한 살 늘어나면서 '철학 없는 삶은 무의미함'을 실감한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방향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게 주체적으로 사는 것인가 아니면 실체도 없는 다수의 횡포에 의해 끌려가는 삶인 것인가. 아마 생각 없이 계속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면 자신이 목적도 철학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이고 사유가 있는 책들이, 한번 쯤은 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가. 나는 지금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해 반문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의식적이기에 방황하는 삶. 방황하기에 40대가 아주 적절한 나이일 것 같기도 하다. 이제야 비로소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내가 내 삶을 마음껏 휘두룰 '권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또 한 권의 책. 고미숙 선생님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이다.
모교의 선배님이시기도 한데, 학부 시절 '고전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에서 잠깐 뵈었던 추억이 있다.
문학이라는 광활한 범주에 치여, 세상 모든 글은 문학적이거나 비문학적이라고 착각했었던 호기롭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글에서 그렇게 고백하셨다. 만약 교수가 되었더라면 문학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나 교수직에서 벗어난 연유로 비로소 다양한 학문에 대해 관심가질 자유를 갖게 되셨다고.
정말 존경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전공자가 전공 학문 하나만에도 깊이를 갖고 평생을 연구하기도 힘든데,
생명과학, 한의학, 자연과학, 역사, 철학.... 그 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공부할 의무도 없는 여러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한 권의 정수로 정리하여 시리즈로 책을 얼마나 많이 집필하신 건지..
문득, 공부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하고, 험난한 공부와 연구 과정을 거치면
무언가 '보상'을 받아야한다고 착각했던 지난 날이 부끄러워졌다.
입시를 위한 공부, 취업을 위한 공부,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
그외에도 어떤 보상이나 '알아 줌'을 위한 공부만을 해왔던 나로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알기 위해'하는
본질적인 '배움'과 끊임없이 '탐구'하는
선배님의 삶에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학교가 답답하다 느껴진다. 활기차고 귀엽고 사랑스런 제자들이 있지만, 수업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졸고 지루해하고, 재미없어하는 그들의 눈빛을 눈치챌 때 가슴이 뜨끔했다.
누군가가 가르치라고 만들어 놓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을 들고 앞으로도 수십 년을 '하기 싫다' 되내이며 아이들을 마주할 자신이 조금씩 없어져가고 있다.
행정 업무나 생활지도 등은 원래 좋아했던 분야가 아니었지만, 수업마저 재미없어 지다니, 정말 큰일이다.
선생님처럼, 진짜 배우고 싶은 분야를 찾아,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든다.
이것이 내 삶의 격일까, 나의 평생의 정체성일까, 살아온 경험의 집결체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들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여러 생각들이 겹친다.
어쩌면 나는 너무 괴어있었나 보다. 오늘따라 너무 일기장 같은 글을 쓰고 있지만, 실제 머릿 속이 정돈되지 않아 하나의 주제로 집결하기가 어렵다.
어른들에게도 담임 선생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잘못하면 혼내고 꾸짖어주시며 '이놈~'해주시고, '너는 이런 성향이 아니니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보라' 조언해주시고, 지금 시간 관리를 잘못 하고 있으니 '여기에 집중해라.' 말씀해 주신다면... 무엇이든 배우던 시절, 어디에나 배울 점이 있는 선배님들이 많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질문으로 글을 끝맺어 보려 한다.
"진짜 어른들의 공부의 범위와 목적은 어디까지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