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로 숨고싶었던 나날들

동굴이 주는 안온함과 평화로운에 대하여

by 은비령

우리 나라 옛 설화 중에 가장 오래된 단군신화를 보면 주인공인 단군왕검은 짐승이었다가 사람이 된 모계부족 웅녀에게서 생명을 얻는다.


보통 이 신화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어둡고 답답한 동굴 속에서 쓴 열매인 마늘만 먹으며 오랜.시간을 인내하고 버텨낸 자에게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부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그 '동굴'이라는 공간이 주는 함의에 대해 생각해 봤다.

동굴은 어둡고 습하고 빛도 없이 답답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늑하고 따뜻하거나 시원하며, 인적이 드물어 홀로 사색하기에는 매우 적절한 공간이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처럼 안정감도 있고.

탁트인 빛나는 공개된 광장 같은 대중의 공간에서 분리하여 오로지 나만의 온기,호흡,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만의 동굴이 있어서 고민이나 갈등이 있을 때 동굴로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고도 하였다.


필자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이나 문제상황을 대화로 풀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기거나 혼자만의 마음정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가끔 동굴 같은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만 일상의 답답함이 해소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캠핑의 경우에도 떠들썩한 먹자판보다는 '자연과 나'만 있을 수 있는 고즈넉한 공간에서

차박이나 솔캠을 하는 편이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니 그간 고요하게 잠수탔던 몇 해간의 나날들은 아마도 이혼이라는 인생의 거대한 파도에 맞서서 따뜻한 동굴 속으로 숨고 싶었던 내면아이의 부르짖음이었던 듯도 하다.


혹여나 주변에 동굴로 숨어들었거나 침대 밑이나 갇힌 공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침묵하는 이가 있다면 그저 말 없이 기다려주길. 진득히 옆에 있어주고 스스로 문을 열 때까지

다정한 눈길로 바라봐주길.


그렇다면 웅녀처럼 짐승이 인간으로 변하는 드라마틱한 결과는 없다해도 동굴 속에서 홀로 침잠하던 그 시간들이 실은 깊은 바닷 속에서 서서히 헤엄쳐올라오고 있었던 엄청난 노력이었음을

부디 누구라도 알아봐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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