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 나이로도 마흔 살이다.
올 여름 여행자 보험을 위해 새로 산출해 봤더니, 보험 나이로는 마흔 한 살이더라.
세상에 태어나 강산이 바뀐다는 십 년을 네 번 거듭했더니 이제 조금씩 세상이 겁나기 시작한다.
멋 모르고 도전하고 꿈꾸고, 시도하고 넘어졌던 젊은 날들이 그립다.
자꾸 움츠리게 되고, 겁나는 일들이 오히려 많아졌고, 점점 달라지는 체력과 체격을 보며 자신감도 없어진다.
40이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씩씩한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것은 정말이지 큰 착각이었다.
부끄럽지만, 마흔이 되고서도 아직도 넘어지는 중이다.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런가, 사소한 일에도 감상적이 되고, 생각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그런 감수성 덕분에 시를 사랑할 수 있게 됐으니, 그마저도 축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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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오 년 전에 다이어리에 정성스레 적어뒀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혼자만 보기 아까워 독자님들과 공유하고자 남겨본다.
< 소금 창고 >
- 이문재-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번 더 피어 있다.
눈 부시다
소금 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 다닌다.
북북 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 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 시를 읽다보니
언제적일지 까마득한 옛 날, 어릴 적 이야기, 젊었을 적 시집살이 한 이야기, 남편에 대한 원망, 그리운 고향 얘기 등을 반복해서 들려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바로 어제 일은 기억 못해도, 까마득한 옛 날의 일들은 어찌나 확연하게 기억하고 계신지
마치 내가 할머니가 주인공인 에피소드를 화면으로 보는 느낌이었달까.
시인처럼, 나도 올해는 늦가을에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보러 서해로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