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스무살 무렵의 감수성을 되살려준 '유럽 여행'에 관한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유럽에 취하고 사진에 미치다-부제: 어느 배낭 여행자의 유럽 소도시 여행>
그랬다. 말 그대로 '배낭'을 짊어지고 두려움도 없이 떠났던 설렘만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의 여행.
당시 나는 스물 한 살, 대학 새내기티를 못벗은 천연하고 풋풋한 청춘이었고,
장학금을 받은 덕에 부모님께서 선뜻 배낭여행을 보내주신 감사함과
머나먼 타국, 유럽이라는 낯설고 기대되는 여행지에 대한 설렘,
함께 고단한 길을 걸을 수 있는 낯선 동행자들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에 더욱 충만했던 여행이었다.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2001년 7월 2일,
나는 생애 처음으로 열 시간이 넘는 비행과 유로스타 버스, 유레일 패스를 통한 각종 열차 여행을 겸해서
단촐하게 배낭 하나만 메고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을 했었다.
지금이야 캐리어 시대지만, 그당시에는 백패킹에나 쓸법한 큰 배낭을 메고 마치 행군처럼
유럽의 돌길을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또 타고 , 국경을 넘고 넘어
21일간 무려 13개국을 여행했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 한 일이 있다면, 아마 그 시절 여행을 결심하고 떠났던 일이리라.
배낭 여행이나 해외 여행이 흔치 않던 시절에 겁도 없이 첫 여행지로 선택했었던 곳이 유럽이었다.
세계사적 지식도 부족했고, 서양 문화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으나
직접 발로 걸으며 눈으로 접했던 유럽의 미술품들과 화려한 성당들,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과 이국적인 삶의 방식, 마치 다른 우주에 온 듯 광활한 자연의 풍경들은
어떤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도 배울 수 없는 '세상의 넓음과 아름다움, 경이로움'을 충만히 느끼게 해주었었다.
지금이야 그저 옛날 일이 되었지만, 당시 여행길에서 첫 사랑을 만나기도 했었다.
함께 고단한 여행을 하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약했었던 설레는 추억의 조각들.
젊은 날, 스물 한 살의 여름과 첫 사랑의 추억은 그렇게 아름답게 익어갔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리즈 시절이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스물 한 살, 그 여름이 그랬었다.
몽마르트의 노을을 배경으로, 가난한 대학생 배낭여행자들은 맥도날드 햄버거로 끼니를 떼우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너무 행복했고,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또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드는 것 외에는 내가 해야할 의무같은 건 없었다.
삶이란 건 결국 풍경 한 장의 추억으로 남는 것 아니던가.
마흔 살. 다시금 추억이 담긴 유럽에 관한 여행 책자를 들춰본다.
지금 나에게 배낭여행은 오히려 큰 사치이리라.
긴 여행을 떠나기에 걸리는 것도 많은 게 사실이고 책임져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당장 떠나는 것 또한 싱글의 자유이리니,
다시 꿈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행복한 독서 여행이다.
**** 읽으면서 설렜던 몇 구절을 필사해본다. ****
언제나 길 위에 서면 자신 앞에 놓인 인생과 마주하게 된다. 잠시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났을 뿐 여행을 떠난 그곳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다양한 삶이 공존하고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미움, 환희와 고뇌의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여 만들어지는 내 인생의 옷이 여행길 위에서 직조되고 있음을 개달았다.
뙤약볕 내리쬐던 이탈리아의 친퀘테레 바닷가, 눈부신 햇살이 빛나던 두브로브니크의 플로체 해변, 스플릿을 향해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보이던 크로아티아의 기나긴 아드리아 해변, 아름다운 저녁놀 내리던 안시의 운하길, 구름낀 풍경이지만 아름답기만 했던 루체른 카펠교의 밤풍경... 그 아름다운 풍경들이 내 마음 속 프레임에 새롭게 새겨졌다...
지금도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길은 계속 이어지고, 모험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발자국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 있는 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항상 새로운 여행을 꿈꾸며 나의 영혼은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머나먼 이국 땅 낯선 거리를 거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