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인의 삶을 추모하며.
삶이 어려워지는 순간마다, 좋아하는 시인의 고뇌를 떠올리려 한다.
누구보다 깊이 사유하고, 많은 고뇌를 통해 삶을 시로 승화시켰을 문학가들의
슬프고 보잘 것 없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 짧은 삶의 흔적들을 사랑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지만, 고뇌 속에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님들.
비록 살아 생전에는 누추했을지라도, 그 누추한 삶의 경험이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줄기 위로가 되곤한다.
오늘은 작가님의 시 중에 끝구절이 인상깊었던 시를 한 편 필사해본다.
제목은 <오래된 서적>이다.
<오래된 서적>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