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배를 위로하며.
김호연 작가님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있다.
작가님을 운 좋게 실제로 강연에서 뵌 적이 있다.
강연의 말미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요?
젊은 작가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실까요?"
라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작가님이 겸연쩍은 웃음으로
"돈을 벌려면 하지 마세요. 그저 쓰고 싶으면 쓰면서 버티세요.
버틴다고 글이 유명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자신 없으면 생각도 마세요."
...
그래, 좋은 작가란, 그저 붓 가는 대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끝내 써내는 사람이다.
작가님은 나의 학부 선배님이시자, 연차로는 8년 선배이시다.
어쩌면 다람쥐 길 어딘가에서 스쳐지나갔을 수도 있고,
먼지 냄새 풀풀나는 폐가실에서 책을 한아름 앉고 지나가다 부딪혔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글에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시절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번에 출간된 '나의 돈키호테'에서도 내가 아는 책 제목들, 그 시절의 노래들, 그 시절 유행했던 책,비디오 대여점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공감이 많이 됐다.
그 중.. 눈물이 날 것 같은, 돈키호테 같은 노래. 1979년 대학가요제 수상곡인 <내가>
이 세상에 기쁜 꿈 있으니 가득한 사랑의 눈을 내리고
우리 사랑에 노래 있다면 아름다운 생 찾으리다.
이 세상에 슬픈 꿈 있으니 외로운 마음의 비를 적시고
우리 그리움에 날개 있다면 상념의 방랑자 되리다.
이 내 마음 다하도록 사랑한다면 슬픔과 이별뿐이네
이 내 온정 다하도록 사랑한다면 진실과 믿음뿐이네
내가 말 없는 방랑자라면 이 세상에 돌이 되겠소
내가 님 찾는 떠돌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겠소
p.40쪽 (책 인용)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이렇게 곱씹을 만큼 아름다운지 이제야 깨달았다. 후렴부의 경쾌한 선율과 힘찬 클라이맥스가 이어지자 내 심장도 뜨겁게 뛰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아저씨가 되고 싶었던 건 방랑자가 아니었을까? 돈키호테처럼 ‘상념의 방랑자’가 되어 세상의 정의를 목청껏 노래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 곁에서 사라진 ‘말 없는 방랑자’가 되어 어딘가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건 아닐까?
노래 가사를 음미해보면, 주인공인 '돈아저씨'가 말없는 방랑자가 되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순수한 사람은 더러운 세상 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주인공 돈아저씨와 같은 부류의 세상의 많은 40,50대 아저씨들은,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그러나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지저분한 세상과 대담하게 맞서싸웠거나,
그도 아니면 방랑자가 되어 어딘가로 사라져 은둔하고 있을 지 모른다.
은둔형 중년..... 말 없는 방랑자....
오늘자 신문 기사에서 서글픈 뉴스를 접했다.
책에서 읽은 '돈아저씨'의 실종과 더불어 집안에 콕 박혀 숨어버린 많은 동지들의 안위가 걱정된다.
이 기사의 주인공도 나와 동년배인데,,, 그간 삶이 어땠을지 너무 상상이 간다.
1999년 신문 기사와 함께 인생도 정지해버린 은둔 중년의 삶....
말 없는 방랑자란, 이런 것인가싶다.
그네들의 이유있는 은둔을 응원하며,,, 오늘은 '내가' 노래 한 곡 들어보면 어떨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5000?sid=102
https://www.youtube.com/watch?v=ivkRj7NRz8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