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성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지성을 타고난 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타인에게는 때때로 성가시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자유로운 여가가 꼭 필요하다. 고도의 지성을 소유한 자에게 여가가 없다면 고삐에 매인 페가수스처럼 불행해진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두 가지, 자유로운 여가라는 외면과 보통 이상이라는 내면의 부자연스러움이 만나면 큰 횡재가 된다. 그 좋은 기회를 잡은 사람은 더 고차원의 삶을 살 것이다. 인간의 고통 중에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원천인 빈곤과 지루함이 인생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행동하고, 여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 인간이 빈곤과 지루함이라는 데서 벗어나려면 이 두 가지를 서로 중화해서 상쇄하는 방법밖에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잘 사는 것일까요?
이 두 질문은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 물음들입니다.
그동안은 저역시 특정 부모와 사회의 테두리 안에 갇혀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남들 사는 대로 살아왔었지만, 제아이에게 동일하게 지루한 삶을 무의미하게 남들 사는 대로 따라 가면 된다고 가르쳐주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남들 사는 대로 평생 따라사는 것이 과연 자기만의 삶이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요즘 세태에 비유하자면, sns를 따르는 삶. 남들이 사는 것을 따라 소비하는 삶. 인기 있다는 직업을 자신과 맞지도 않는데 선택하게 되는 삶. 인기 유투버들이 하는 대로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부러워만 하는 삶... 이런 모습들이 해당될 것 같아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고도의 지성을 소유한 사람이, 자유로운 여가 없이 고삐에 매인 페가수스처럼 사는 것은 불행을 초래합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여가'란 무엇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초등 개념어 사전에는 '여가(餘暇)'를 '일이 없어 남는 시간 또는 일을 하다가 쉬는 틈.'이라고 했고,
한국민족개념어백과에서는 '휴식을 겸한 다양한 취미활동이 포함되는 경제 활동 이외의 시간으로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성인은 더 많이 쉬어야 하고, 자유롭게 즐기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뜻일까요?
좀더 생각을 이어보면, '여가'란 반드시 '휴식, 여행, 취미' 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고통스러운 속박이나 일을 하는 얽매인 시간의
반대 개념은 모두 여가인 셈이지요.
하루 중 나 자신에게 오롯이 부여된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시간',
'자유의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한가한 시간' 등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꼭 그 시간에 무언가 재미있는 유흥거리를 찾거나 스펙타클한 취미생활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가 시간에 무얼할지는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의지니까요.
쇼펜하우어가 왜 고도의 지성인에게 자유로운 여가가 필요하다고 한 걸까요?
그것은 생각하는 인간에게는 반드시 자유 의지와 선택할 수 있는 독립적인 결정권이 필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대부분의 ceo나 리더들에게는 자유 의지와 독립적인 결정권이 존재하죠.
누군가의 밑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하시죠'라고 당당히 말할 자유가 반드시 밑바탕 되어야 개인의 인생은 행복해질 겁니다.
또 쇼펜하우어는 '자유로운 여가라는 외면과 보통 이상이라는 내면의 부자연스러움이 만나면 큰 횡재가 된다. 그 좋은 기회를 잡은 사람은 더 고차원의 삶을 살 것이다. 인간의 고통 중에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원천인 빈곤과 지루함이 인생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보통 이상의 내면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내면이 부자연스럽다라는 것의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부자연스러움'임을 주목해 봐야해요.
내면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나 사회의 흐름, 타인의 생각 대로 끌려서 사는 삶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사회나 시대의 흐름, 가치관, 생각을 거슬러서 나만의 주도적인 내면을 갖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역행'이 되겠지요.
왜 사회는 남보다 조금 독특한 사람, 평범한 삶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지 않았던 것일까요?
제 경우만 보아도,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잣대보다 자신의 내면의 깊은 신념을 따르는 삶을 따르라고 해준 이는 드물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또는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녀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거나,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미래도 그러할 것이라고 단정짓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꼰대의 극치니 말이죠.
만약, 내 아이에게 인생을 슬기롭게 잘 운영해갈 비법을 물려준다고 한다면,
빈곤해지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라.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것이 쇼펜하우어님이 말한 인생의 최대의 고통인 '빈곤과 지루함'을 물리칠 수 있는 방패일 테니까요.
요즘 s기업의 광고 문구가 떠오르네요.
"좋으면 됐어. 무언가 되고 싶기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중요해. 좋으면 됐어.
지금 좋은지 안 좋은지 생각해 봐. 인생은 좋은 것만 채우기도 바쁘거든.
남이 뭐래도 득이 안 돼도 좋으면 됐어."
그렇다고 예전처럼 좋은 것만 찾아서 'yolo'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고도의 지성을 먼저 갖춰야겠고, 그 지성의 주도권 아래,
스스로의 판단을 믿으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겠지요.
하루의 주인이 되어야, 내 시간을 어떤 여가 시간으로 채워갈 지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