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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Sep 10. 2024

삶을 돌아보는 수필 쓰기

 feat. 서투른 창작의 시간들

경험을 나타내는 글 쓰기 단원을 가르치는 중이다.


학생들은 아직 '아이'티를 못 벗은, 갓 청소년이 된 중학교 1학년 녀석들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즈니 ost를 bmg으로 깔아준다. 아이들은 환상적인 음악을 들으며 놀이동산을 떠올리느라 글쓰기 따위는 잊은 듯하다.


'쓸만한 가치 있는 경험'을 자유 연상을 통해 10분 안에 떠올려 보자고 닦달해 본다.

갑자기 아이들은 웃음기가 사라진 미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표현하고 싶었던 '순간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한다.

그랬더니 안경 사이로 비친 눈빛에서 당황이 스쳐간다.

국어 시간에도 그림을요? 차라리 그냥 쓸게요.


음악은 흘러 흘러 세 번째 곡으로 접어들고, 아이들의 개요표에도 조금씩 단어들이 채워진다.

설익은 문장들을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표정들이 제법 작가 같다.



수필을 이론으로 가르칠 때는 몰랐다.
자유롭게 붓가는 대로, 키보드로 누르는 대로 쓴 글들이
하나 둘 모여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채우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는 걸.
그 삶의 퍼즐 조각조각들을 나누어 읽고 공감하다 보면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스며들게 된다는 것을.


얼굴도 사는 곳도, 살아온 이력도 모르지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작가님들의 글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같이 즐겁기도 하고, 가끔 어깨도 토닥여주고 싶어 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이 참 위대하고 귀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작가님'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수필가'가 될 수 있다.

자기만의 소중한 경험이 한 편의 글로 세상에 드러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글을 통해 작가님들의 삶에 벤 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글로 적힌 텍스트는 활자로 남아 오래오래 누군가에 의해 읽힘을 통해,
읽는 이의 삶의 여백을 채우고, 여운을 주는 '인간미'를 알게 한다.



수필(隨筆)은 청자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피천득 님의 '수필'에 나오는 구절이다.


청자연적과 같이 맑고 청초하고 단순한 글.
화려하지 않고, 담백해서 더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우리네 일상의 글.
어딘가 극적이지도 않고, 주인공이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친구 같고 익숙한 글들.



요시다 겐코라는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렇다 할 일도 없이 지루하고 심심하여, 하루 종일 벼루를 붙잡고, 마음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쓰노라니, 이상하게도 기운이 복받쳐 나도 모르게 미칠 것만 같구나.


할 일도 없고, 사는 게 매일매일 똑같고 지루해서 견딜 수 없을 때,

무언가 할 말은 많은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없을 때,

어딘가 비밀스럽게 털어놓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기억으로 봉인하고 싶을 때,

감사하고 짠한 마음을 정성스레 전달하고 싶을 때,

일상의 잔잔한 평화를 함께 나누고 싶을 때...


그 모든 순간들을, 소박하게 기록해 보면 어떨까




삶을 돌아보는 수필 쓰기란 그런 것일 테다.


인생이 장편 영화라면, 수필은 영화를 구성하는 한 편 한 편의 샷일 테니.

그 짧은 순간들을 쉬이 잊지 않도록.

멋진 수필가가 되어보자!


ps. 배경 음악이 동반되면, 창작의 고통도 즐길 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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