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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Dec 20. 2024

이혼 후 십 년, 어느 주말에

이혼한 지 딱 십 년이 됐다.

삼십대 초반이던 그 시절에는 몰랐었다.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며 남은 나날들을 버텨내기엔

너무 아리땁고 아까운 나이였음을.

남은 나날들이 생각보다 너무 길다는 것을.

진짜 인생이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시작됐음을


나의 이혼 소식과 양육자 지정 소식을 알게 된 지인들의 반응 중에 제일 기억나는 건

"니가 왜 애를 키우니?"라는 친척의 화풀이같은 호통이었다.


이제는 안다.

그 질책 같았던 한 마디 안에

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과

앞으로의 나날에 대한 두려움과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한 애잔함과

일이 이렇게 풀려버린 것에 대한 분노가

오롯이 담겨 있었음을.


(실은 그 말을 하셨던 친척어르신은 지금 내 아들을 가장 예뻐해주시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다ㅡ)



십년 후.

드라마의 자막처럼 간단히 요약할 수 없는

지난하고 디사다난했던

인고와 슬픔과 서러움이 겹겹이 쌓였던 시간들.

그럼에도 행복할 수밖에 없었고

슬픔의 사이에서 멈추는 간이역을 지나듯

순간순간 웃으며 지내온 많은 스냅사진 같은 추억들.


나는 멀쩡히 살아 숨쉬고 있고(심지어 건강 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남들 보기에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고

내 아들도 잘 생긴 소년으로

모범생으로 칭찬받으며

늘 사랑을 고백하는 다정한 인기쟁이로

의젓하게 자라주었다.



십년의 세월..

오늘 그 세월이 후회스럽지 않은 한 장면이 있었다.


성탄절과 나의 생일이 다가오는 12월의 어느 평범한 하루에,

아들 녀석은 늘 그랬듯 다정하게 축하 파티를 기획하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 무정한듯 다정하게, 애써 모른 척하며 아들의 축하 파티를 기다린다.


다이*에서 저렴한 파티 용품들을 공수해 와서, 집안 구석 구석을 파티룸처럼 꾸며본다.

아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반짝이는 예쁜 조명으로 집안을 따스하게 만들어본다. 

직접 뜬 코바늘 리본 장식으로 트리를 꾸며주니 그럴 싸하다.

아이는 '사랑합니다'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가랜드를 골라와서 거실 중앙에 매달아둔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이가 걸어둔 '사랑합니다 가랜드'를 보며, '그래. 엄마도 많이 많이 사랑해'를 속으로 되뇌이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쁘셨던 부모님을 위해 할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모든 친척과 친구들에게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 역시 지금 내 아이처럼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었다.

한 학급에 50명 가까이 되는 모든 친구들의 장점을 칭찬하며 손수 서툴게 만든 귀여운 종이 카드에 반짝이 펜 등으로 온갖 유치한 장식을 해가며, 밤새 써간 카드를 성탄 이브에 아이들에게 수줍게 나눠주곤 했었다. 


아들은 이런 것조차 나를 닮은 걸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사소한 이벤트를 즐겨하며, 타인을 챙기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아이...

그 다정함은 아마도 엄마인 내게서부터 본능적으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다. 과거의 순수했던 나를, 아무 시련이 없었을 적, 맑았던 시절의 나를.

그런데 내 아이의 모습 속에서 어린 시절, 사랑스러웠던 자아를 발견한다. 

아이를 통해 되찾은 내 모습, 그리고 오묘하게도 닮은 우리들... 

가족이란 서로를 닮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보다. 



2인 가정인 우리 가정은 늘 남들 못지 않게 서로를 아껴왔다.

'남들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가 과연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지만, 

사랑의 크기, 다정함의 온도 만큼은 어느 단란한 가정 못지 않게 뜨거웠었다.


사소하고 단란한 나날들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 안에서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아들과 함께 살아 숨쉴 수 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이런 말을 하면, 팔불출일 텐데.

초등학생 아들 녀석의 말도 안되는 사려깊음을 보면서

문득문득 '잘 키웠냈다.십 년, 잘 버텼구나.

그간 참 고생많았다' 싶을 때가 많다.


아마 앞으로도

삶의 순간마다 더 감동받으며

진솔하게 인생이란 무대를 즐길 수 있겠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행복은 무엇일까 반문해 본다.

사실 행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평안한 하루 하루가 모여, 수많은 걱정들을 물리치고

또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싱글맘이다.

내가 이렇게 십 년이 지나도록 싱글맘일 줄은 이혼 직후에는 미처 상상도 못했다. 

그만큼 십 년이란 세월은 강산이 변할 만큼, 세상이 뒤집힐 만큼 긴 시간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 긴긴 세월을 무사히 버텨낸 것만으로도 (물론 다소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스스로를 칭찬해 마땅하다고 자축해본다.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같던 일들도

감히 엄두도 못낼 것 같은 일들도

어찌어찌 버텨내다보면 다 살아지더라.

그게, 인생이더라. 


앞으로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의 남은 10년이 거대한 빙산처럼 나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대도, 걱정도 하지 않으련다. 


그저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아껴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보면,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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