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4.7.31 발행한 글을 재구성,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애ː지-중ː지, 愛之重之, 금지옥엽(金枝玉葉).
귀한 자녀를 아끼는 마음에 관한 말들이다.
최근 적지 않은 20,30대 젊은 이들이 자녀를 낳고 싶어한다고 들었다.
마땅히, 그럴 것이다. 아마, 자연의 섭리 아닐까?
자신을 닮은 후손을 이 세상에 남겨, 종족을 보존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있을 테니.
게다가, 귀하게 자라나 사랑받고 자란 사람일수록,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동시에, 내 자녀에게도 그 사랑을 내리 사랑으로 물려주고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나 역시, 부모님께 귀한 딸로서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갚을 수 없는 크기로 과분하게 받고 있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40이 넘어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다 큰 딸에게, 주에 2,3회씩 오셔서,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앉아서 쉬어라. 일 하고 와서 얼마나 피곤하니."
엄마의 정성스런 밥상을 아이처럼 맛있게 받아먹고,
뒷정리라도 도와드리려고 하면 또 이러신다.
"됐어. 엄마가 할게. 너는 저기 가서 쉬어라.
엄마는 안 힘들어. 엄마 없을 때 하면 돼지~"
....
가끔은 또 귀찮게시리 물어보신다.
"뭐 먹고 싶은거 없니? 밥은 먹어야지. 엄마가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서 그래."
아직도 내 밥상을 차리다 못해, 늘상 '밥 먹는 일'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고 끊임없이 내 안위를 걱정하시는 단 한 사람. 나의 어머니다.
아마, 이혼 후에 돌싱이 된 이후로, 친정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정말로 홀로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분들도 계실 텐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부모 복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부모님의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내 자식이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심지어 칠순 노인이 된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부모님 보시기엔
물가에 내놓은 새끼 오리처럼 안타까워 보이시나보다.
昊天罔極이라 했다.
부모님의 은혜는 끝없는 하늘과 같이 크다는 말이다.
세상에 내놓은 내 새끼가 어찌될까 걱정해서 그 걱정에 눈도 편히 못 감으시는 세상의 수많은 부모님들...
그분들의 걱정과 관심과 사랑으로 어른이 된 우리가 힘든 세상 속에서도 이렇게 하루 하루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크신 사랑에 감탄하며, 곤히 잠들어 있는 내 새끼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해본다.
말 그대로, 어디 하나 안 귀한 곳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사랑스럽다.
대중 가요 가사처럼, 정말 딱 '사랑스럽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내 뱃속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어여쁘다.'
잠시 노래 한 곡 소개해본다. 여기서 '여자'를 '아들(또는 딸)'로 바꿔부르면 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8qWKnx2IWF0
'Oh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Oh 니가 나의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기다림이 즐겁고 이젠 공기마저 달콤해 이렇게 너를 사랑해 세상이 힘들어도 널 보면 마음에 바람이 통해 이런 게 사는 거지 이런 게 행복이지 이제야 느끼게 됐어 나를 온종일 우울해도 널 보면 머리에 햇빛이 들어 이렇게 놀라운 게 사랑이지 기다린 보람이 있어 지난번 사랑처럼 울까봐 한참을 망설였지만 보채지 않고 나를 기다려준 너 편안하게 스며들어와 Oh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Oh 니가 나의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너무 팔불출인가?
하지만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리 자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야 사랑으로 가득찬 아이로 자라날 것이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감 높고,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라날 것이기에.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사랑은 나만 준 것이 아니다.
자녀들도 부모가 모르는 순간에도, 부모님에 대한 치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물려받은 사랑만큼, 아니 그 반에 반 만큼이라도, 자녀에게 표현할 줄 아는 다정한 부모가 되고 싶다.
그리고 등을 보여주는 부모로서 늘 허덕이며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자녀들은 다 알고있다.
더 해주고 싶고, 대신 아파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때로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