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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Nov 29. 2024

만남도 고달프다

면접교섭에 대하여

한부모 가정의 주 양육자로서 아이를 양육하다 보면 아이가 나로부터 분리되어 '떠나는' 단발적인 이별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법원에서는 이렇게 주양육자인 엄마 혹은 아빠와 분리되어 비양육자인 또 다른 부모를 공식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면접교섭'이라 칭한다.


면접교섭이란, 민법 837조 2항에서 규정한 권리로서,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자식을 양육하지 않고 있는 비양육친과 자식이 서로 면접과 교섭을 통하여 접촉할 수 있는 권리.
법적으로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개개인에게 부여된 천부적인 인륜적 고유권한으로 해석된다.


처음에는 아이의 행복 추구를 위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최대한 협조하고자 노력했다. 다행히도 전남편은 아이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10여 년의 기간 동안 한 번도 면접교섭 약속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아이와 꾸준하게 부자지간을 잘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와 비양육자(전남편)의 만남과는 별개로, 그 만남으로 인해 10년이 넘도록 매주 전남편과 간접적으로 왕래를 하며 지낸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아이를 매개로 전남편의 소식을 계속해서 들어야 하고, 가끔은 마주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는 상대방에 대한 미움, 원망, 분노 같은 감정들이 막연히 남아있는 걸까? 최대한 무관심해지고 싶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어나가야 하는 관계가 있다는 걸, 그것이 어른의 관계라는 걸, 또다시 배운다.


살다 보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원하거나 의도치 않았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며 포커페이스를 해야 할 경우가 많이 생긴다. 더구나 아이 앞에서 나의 내면의 약한 모습들을 보일 수는 없기에,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애쓰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어디 대나무 숲에라도 가서, 힘든 걸 힘들다 외치고 싶다.


아마도 많은 한 부모 가정의 양육자들이 비양육자들에 대해 느끼는 다소간의 불편한 감정들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어찌 편하겠는가? 그 사람들의 죄는 용서했을지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인데..


어떤 경우는, 양육자가 비양육자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사람을 고용해서 면접교섭 때 아이를 데려다주는 일을 위임한다는 사례도 들었다. 얼마나 그 일이 껄끄러웠으면 대신해 줄 사람까지 구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어느 정도는 그 마음이 짐작이 간다.



내 경우 면접교섭은 매 주말마다 이뤄져서 꽤 잦은 왕래를 하는 편이다.

내게 주말은 편히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날은 아니다.

아이가 내게서 분리되어 다른 이의 품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이 반복되는 하루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마치 누군가와 반복적으로 작별을 하듯, 서성대는 마음을 붙잡기가 힘들어진다.


법원에서는 그러한 만남을 '면접 교섭'이라고 호칭했다.

주말마다 아이가 나를 떠나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보낸 지가 몇 년째이다.

어떻게 보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그 시간이 한없이 기쁘고 소중하지만,

또 때로는 아이와 함께 주말을 단란하게 보낼 수 없음에 한 없이 외로워진다.


어떨 때는 '어린이용 위치 추적 어플'을 켜보면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무슨 일이 있거나, 혼자 방치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하고 걱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물론 아이와 아이 아빠는 안정적으로 부자관계를 아주 잘 형성하고 있기에,

그런 걱정이 괜한 간섭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뭔가...

왠지 모르게 주말마다 찾아오는 '홀로 됨의 시간'을 통해

나는 이혼이라는 삶의 후유증을 매 순간 다시 느끼게 된다.


아마도, 아이 역시, 주말마다 엄마와 분리되어 아빠집이라는 또 다른 가정의 공간에서

많은 혼란스러움, 서글픔, 답답함 등을 느끼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태연하게 아빠와의 만남도, 엄마와의 시간도 잘 보내주고 있는

아이에게 또 한 번 미안해지고 애틋해진다.


언젠가 연휴가 낀 주말,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를 이틀이나 못 봐서 슬픈 날이에요. 그런데 아빠도 보고 싶어요."

"하......(말잇못).

"00아, 아빠랑 신나게 놀다 오면 돼~ 엄마도 재밌게 놀고 있을게. 아무 때나 전화하고 잘 다녀와~ ^^"



견뎌내야 할 것이다.
어른인 나조차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어린 마음에 상처받으며 자라나는 많은 이혼 가정의 어린아이들은
그 혼란스러움과 남들과 다른 가정의 분위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만나지 않아도 고달프고, 만나도 조금은 고달파지는 것이
'면접 교섭'이라는 녀석의 모순됨이다.



더 강해져야겠다.

사실 그까짓 거 자유롭고 호기롭게 마음껏 놀면 되는 이틀 아닌가.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동네 바보형처럼

지나가는 행인들 바라보며, 무해한 웃음이나 지을 수 있는,

한 없는 한량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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