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곳에서 달라진 것은 어떤 점이 있을까?
어제 문득 수영장 벤치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시원하게 부는 오후의 열대성 바람을 맞다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참 행복하다. 자유롭다. 평안하다. 그냥 이대로 살 수는 없는 걸까?
그저 파아란 하늘과 높푸른 산들,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바닷빛 수영장 풍경, 야자수 나무, 시원한 과일향 맥주 한 캔,
평화롭거나 리드믹한 적당한 팝의 선율의 음악까지 추가하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이 나라(필리핀) 사람들이 그렇게 낙천적이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걸까?
늘상 더워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가도,
매일 새벽 5시면 솟아오르는 부지런한 태양의 서두름에 눈이 절로 떠지며
또 하루를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더위에도 호들갑 떨지 않고, 자연의 기후를 받아들이며, 날씨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서 파는 다소 두툼한 겉옷을 보고
'이 날씨에 이런 옷이 팔릴까?' 했던 것은 절대로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들에게도 바람 부는 날, 비 오는 날이 있고,
추위에 조금이라도 약한 체질의 필리피노들도 있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적절한 의복을 갖추어야 마땅하기에
긴팔은 아주 자주 손이 가더라.
더구나 열대 기후라 풍부한 과일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레모네이드, 망고쉐이크, 리치향 맥주, 코코넛 잼, 파인애플 쥬스 등등
상큼하고 달달한 음료 및 간식들이 지천이다.
20대 여성들 취향 저격일 듯!
우리로 치면 40대 아저씨들도 웃통 확 제낀 채, 길거리에서 더위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현지 교통수단인 툭툭이, 오토바이 등을 타고 10분만 나가도 다이빙할 만한 에메랄드빛 바다가 널려있다.
우와~~~~~~~~~~~~~~~. 바다다~~~~~~~~~~~~~~~~~!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바다가 이토록 가까이에 있다는 게 너무나 부럽다.
이곳에서 여름 휴가 며칠, 혹은 한 달이 아니라, 사계절을 지내보고 싶어진다.
필리핀에는 성인 대상의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많다고 들었다.
그냥 잠시 모든 것을 멈춰두고, 미친 척, 일 년 정도 어학연수를 하면 어떨까.
대외적으로는 어학연수,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인생의 쉼표로
일 년을 안식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늘상 바쁜 척하며 살았던 걸까.
일이 뭐 그리 대수라고.
여기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부는 바람의 감사함을 느끼다보니,
인생에 뭐가 더 필요한가 싶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누구에게나 숨어있다.
다만 그 여유를 꺼내 줄 열쇠를 찾지 못하고, 기어코 이런 휴양지에라도 오니까,
필연코 내게도 있었던 '마음의 여유'를 겨우 마주하게 된다.
만약 한국에 돌아가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그려진 커다란 사진으로 벽 한 쪽을 장식하려한다.
바닥에는 라탄 짜임의 내츄럴한 러그를 깔고,
열대우림에 살 것 같은 커다란 화분도 놓는 것이다.
내 방이, 내 집이 열대 휴양지가 된 것처럼.
그리 살면, 일 년 365일을 내내 여유롭게 지낼 수 있을까?
급할 것이 없는 여유있는 필리피노들의 삶의 태도에서, 내가 한 없이 부족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날이 덥다고, 날이 선선하다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 곳 날씨는 어떠니?
그 모든 날들은 다 축복이었다.
나름의 태도로 다 극복했던 것들이었던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열흘, 내가 마주한 가장 큰 차이는
열대우림의 날씨를 대하는 그들의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내게도 조금은 생겼다는 점이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이기도 했으니, 이런 기도로 글을 끝맺을까 한다.
"Gracias a Dios por todo."
(하늘이여, 이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