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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Jul 17. 2022

고백이 주는 진실의 힘.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를 곱씹으며.

오늘 자폐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시가 한 편 있었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진실의 힘'에 관한 이야기.

드라마 내용 중에 주인공 변호사는 승소를 하고도, 잘못했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피고인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 쓰인 마지막 질문 때문이었다.

"변호사님은 소송에서 이기기만 하는 변호사가 되시겠습니까.

진실을 이야기하는 변호사가 되시겠습니까."


사실.. 한 때 법조인을 꿈꿨던 사람 중 하나로서, 법조인들에 대한- 특히 변호사들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 이토록 집약된 날카로운 질문을 보지 못했다. 변호사들은 그들에게 소송을 의뢰한 원고가

 선의이든 악의이든, 거짓을 말하든 진실을 말하든 그들의 입장에서 변호한다.

 하지만 만약 거짓을 말하는 악한 사람들을 변호해야한다면?

 슬프지만, 진실보다는 거짓이 많은 세계에서,

 진실 따위는 관심도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오로지 진실을 위해 달려간다는 건 생각보다 더 외로운 싸움일 터.

결국 진실이 승리한다하더라도,

 그 길고 고난한 과정을 통해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고백과도 같은 이 시가 떠올랐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나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자신의 인생이 덧없고 어리석었다는 어렵고도 힘든 고백.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있을까. 나는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그래도 내 인생은 꽤 괜찮았다 가식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생애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시인의 고백 덕에.

우리는 삶의 진실을 하나 더 알게 됐다.

남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는 시인의 자조석인 삶에 대한 성찰.

나의 젊은 날을 되돌아보며, 나 또한 질문해 본다.


그토록 아름답고 치열했던 나의 젊은 날,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매었던 것일까.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사랑했던 것일까.

인생에 대해 조금더 솔직해지고 진솔해진다면,

남은 날들에 대해서 후회는 없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인생에 대해, 얼마나 진실하게 고백할 수 있을까.

우리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바로,

 진실이 주는 힘을 통해 남은 생을 거짓됨 없이 결백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짧게 쓴 조각같은 글들이 모여,

단 한 사람에게라도

 진실이 주는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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