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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Jun 26. 2022

숲 속 도서관

# 책이 주는 치유의 힘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책을 읽는 방법을 매일 같이 가르치면서도 정작 독서에 왕도가 없음을 알고 있다. 세상 어떤 일이든 최소한의 노력과 땀과 피와 시간이 들어가야 결과물이 나온다는 진리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책은 나에게 삶의 비상구였다. 실제 보이는 현실 속 삶은 지루하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고, 눈에 보이는 이상의 무언가가 어딘가에서 별처럼, 은하수처럼 빛나고 있을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래서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책이 있는 공간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앉아 책 속 세상에 빠져들곤 했었다.


역시나 내 기대에 부응하듯, 책 속에는 실제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이있고 멋을 지닌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그들의 삶을 곁눈질로 옅 보는 재미는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책냄새가 가득한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서면 그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에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곤했다. 그냥 책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나에겐 위로의 공간이었달까.


책 못지않게 내가 좋아했던 것은 낯선 세상을 직접 부딪혀보는 여행이었는데, 어느 날엔가 대만 자유여행을 하다가 예약해둔 숙소를 못찾아 큰 트렁크를 들고 혼자 낑낑대고 있는데, 눈앞에 '숲 속 도서관'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숲? 그리고 도서관? 시내 한복판에서 조금 벗어난 외진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서관은 단층 짜리 건물이었다. 단층임에도 내부의 넓이는 꽤 넓어서, 도서관 안에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바깥풍경을 바라보니 온통 초록초록한 신비한 숲 속에 책과 나, 둘만 있는 기분이었다. 

다들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는 책 표지들을 둘러보며, 무슨 내용인지 알지도 못할 책들의 표지를 쓰다듬어도 보고, 그림을 훑어보기도 하고, 한 장 두 장 넘겨보기도 하면서 한참을 멍하니 숲 속 도서관에 앉아 쉬었다. 


길을 헤맨 덕에 발견한 그 작은 숲속 도서관이 주는 고요함과 평화로움 덕분인지, 그 이후로의 대만 여행 내내 대만이란 나라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졌고, 왠지 모를 선한 기운도 뿜어내주는 것 같았다. 


그 뒤로도 나는 국내든, 해외든 낯선 도시에 들어서면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를 지도로 검색하고, 그 주변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는 세상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풍경들, 물건들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지만, 책 냄새와 숲 냄새가 어우러져 함께 지어내는 풍경은 그 그윽한 아름다움을 감히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지저귀는 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어디선가 집집마다 짖어대는 동물들의 울음 소리, 그리고 바스락 거리면서 책을 넘기고, 책을 꽂고, 살피며 책과 함께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조용한 모습들. 


결국 우리가 책을 가까이 하고, 그 안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은 고단한 삶 속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치유하기 위함이 아닐까. 옛 선인들이 말씀하셨듯, 어떤 풍파에도 변치않고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은 자연과 책뿐일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든 책 속에는, 어제 내가 했던 고민들의 답이 담겨있을 터. 비록 책을 읽고 무언가 대단한 변화가 없을지라도. 오늘 자연 속에서 고요히 보낸 내면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내 삶을 지탱해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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