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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밝히지 못 하는 다섯 가지 이유

by 은비령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니라 하고, 마치 '버스 갈아타기' 처럼 더 나은 배우자를 찾아 환승하는 경우까지 있을 지경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나의 아픔을 공공연하게 오픈할 수 없는 것일까.

오늘은 나만의 대나무 숲인 브릿지에 이 문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으려 한다. 차분히 글로 마음을 정리하다보면, 문제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문제를 단순화하다보면 의외의 해결책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자~~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하나. 이혼은 내 생애 최대의 실패? 혹은 어쩔 수 없었던 차선이라서?

-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들을 맞닥드리곤 한다. 내 경우, 이혼 전에는 입시나 취업, 교우관계나 연애 등등 삶의 여러 단계에서 그다지 큰 실패를 못해봤었다. 아마 모범생들이 한 번 실패하면 주저 앉아 일어서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작은 실패'들을 겪어보지 못해서 일 수도. 아이들이 첫 걸음마를 배울 때 수만 번 넘어지고 걷기 시작한다던데, 그 수많은 '넘어짐'이 인생을 일으키고 버티게 할 힘이 되게 한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사십 평생 이혼은 내 인생 최대의 위기였고, 아직 이혼을 극복한다는 건 현재 진행 중인 것 같다.


둘. 나의 이혼은 아이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자녀교육 문제를 지켜봐야만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은 아이들에게 크나큰 아픔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이 가정의 분위기에 영향을 적게 받을 만한 연령은 몇 살쯤일까?'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사춘기기)? 대학생이 지나서? 군대를 다녀오거나 결혼을 한 이후?

사실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부모는 필요하다. 가정 환경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기특하게 잘 자라주는 녀석들이 간혹 가뭄에 콩나듯 있긴 하지만. 많은 경우, 방황을 하는 경우를 더 쉽게 볼 수 있었기에, 내 아이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고 있음을 쉽게 밝힌다는 것이 참 어렵다. 혹여나 편견 속에 받을 상처가 있지는 않을까.. 그런 바보같은 걱정에서말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상처받는 것을 쉽게 허용할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셋. 이혼 사유- 성격 차이? 뭔가 문제가 있었겠지?라는 편견

- 법원에서 '합의 이혼서'를 제출할 때, 나 역시 <성격차이>라는 불분명한 원인으로 사유를 적어냈었다. 하지만 이혼 과정에서 성격차이는 기본, 폭력과 폭언, 신뢰의 붕괴, 각자의 집안 싸움으로 번지며, 서로를 헐뜯고 배려하지 않는 온갖 진흙탕을 겪었던 터라.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가정폭력이었지만, 내가 폭력을 당한 피해자라는 것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냥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었으면 싶을 때가 많다. 지금도 역시 폭력적인 남자들이나 폭력적인 상황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고, 피하고 싶고 하니까. 상담 선생님은 내 안의 깊은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고 하셨다. 그걸 극복한다는 건 인생의 새로운 과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이혼 후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커밍아웃하면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왜 이혼하셨어요?"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크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넷. 언젠가 모든 것이 괜찮아지면 그때 고백하고 싶어서.

- 나는 작은 체구에 비해 강단있는 성격을 지녔다는 평을 꽤 듣곤했다. 맏이로 자라서 그런지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남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늘 스스로 해결하려 노력해오기도 했다. 기특하게도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 육아나 경제적인 문제 등을 스스로 감내하며 버텨오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늘 버겁고 힘들다.

그러다보니 신체적인 균형도 자꾸 무너지고 여기저기 아프기 일쑤다. 일은 일대로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 것 같고, 아이도 잘 크고 있는건지 늘 걱정이 앞선다. 나의 사정을 다 아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은 그런 나를 대견해하며 '잘 해내고 있어'라고 응원해주지만, 사실 내가 꿈꾸던 가정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기에. 자랑스럽게 저 이렇게 잘 해내고 있어요! 칭찬해주세요! 라고 오픈하지 못하겠다.

sns에 본인들의 만족스런 삶을 자랑하는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비교도 되고. 쓰고 보니 참... 못났다. 왜 이렇게 못 난건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도 지겹고.

하지만 사실 이혼은 내 잘못이 아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였다면, 내 존엄성이나 아이의 건강한 양육 환경을 위해서라도 결혼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 편이 나은 선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사실 용감하게 이혼을 결정했던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현명했고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막상, 이혼과 자녀양육을 감당해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은 문제였기에. 이제 겪어보니 알겠다.

결혼은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고, 출산과 양육에는 더더욱 큰 책임감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녀양육을 해야하는 싱글맘의 입장에서, 이혼 후 삶은 고되고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내 아이 때문에, 아이 덕분에 행복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여기서 일단락. '언젠가 모든 것이 괜찮아질 때'란 언제일까? 살아가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을 테고, '괜찮다'라는 감정 역시 상대적인 것이기에. 이제는 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다섯. 내향적인 성향 + 사생활을 침범하는 프라이버시의 이유로.


- 남들은 쉽게도 부부싸움 문제, 시댁 갈등 문제, 연애 문제, 이별 문제 등등을 구구절절 이야기하고-심지어 상대방이 별로 듣고싶어하지 않아도 계속 자기 이야기만 해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오픈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결혼이나 이혼 상태와는 다소 무관하게, 그저 일일이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 이유가 큰 것 같다. 여성들이 많은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내 주변에는 본인들의 가정사를 지나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사실 말이지, 듣다보면 피곤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이런 생각이 들 정도. 그냥 각자의 삶을 살면서,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점점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사생활의 영역을 굳이 공유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남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듣는 일은 매우 피곤하다. 내 인생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기꺼이 공유할 사람들은 내가 믿고 의지할 평생 친구들이면 족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혼을 밝히지 못하는 다섯 가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사유에 해당하므로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나의 경험담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싶다. 아픔을 함께 공감하며 치유할 수 있기를. 모두가 남의 눈치 안 보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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