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중심지로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이가 있는 부모들과 연인들이다. 그래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공간에 가면 부모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절대로 놓아주지 않고 가만히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또 시간이 가만히 서 있는 곳에 가면 건물 그늘에서 연인들이 끌어안은 채 입맞춤을 하면서 절대로 놓아주지 않고 가만히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들은 시간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지니고 있는 정열을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의 한 가운데에는 가지 않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슬픔이 담긴 그릇이지만 삶을 사는 것은 숭고한 일이고, 그리고 시간이 없으면 삶도 없는 것이라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만족한 기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한다. 설령 그 영원이 표본 상자 속에 박힌 나비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앨런 라이트맨의 <아인슈타인의 꿈> 가운데...
cbs fm의 즐겨듣는 프로그램인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를 엣세이집으로 묶어 출간한 책에서 발췌한 구절이다. (쉬면서 길에게 길을 묻다 中)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시간 속에서 멈췄던 순간들은 언제였던가 떠올려본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은 마치 필름 사진처럼 순간순간이 추억으로 남고,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같았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 아이가 지어내는 표정, 아이가 내뱉는 하잘 것 없는 모든 언어와 몸짓들.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이 느끼는 감정과 아이를 키우는 감정은 사뭇 다르지만, 또 한편 사뭇 비슷하다.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렘과 황홀함을 아이로 인해 느꼈었던 것이다. 일곱 살인 내 아이는 아직 '학교나 사회'가 주는 위압감과 억압,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적인 관습이나 이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무지함'이 주는 순수함과 연약함이 나를 무릎꿇게 하고, 나를 미소짓게 한다. 그 녀석과 함께 하는 모든 사소한 순간이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나 자연 속에서 즐기는 캠핑의 순간, 시골길에서 느끼는 풍요로움과 바람결을 타고오는 자유로움 같은 것들이, 어른과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행복하다. 어쩌면 어린이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아마 그런 사소한 몸짓의 순간들이 내가 시간 속에 서 있는, 멈춰있는 '영원의 박제'같은 순간이 아닐까.
시인 이상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말했었는데, 박제가 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을 잊을 만큼,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소중한 추억들은 보잘 것 없는 하찮은 내 삶을 가장 빛나게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