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남녀 관계.
(關係)
사전적 정의로 ‘관계’는 서로 관련이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인간 관계’는 정답도 없을 뿐더러 제 각기 그 기준이 다르며,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어려운 숙제입니다. 제게 있어 가장 어려웠던 인간 관계는 부부 관계였어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삼십 년 넘게 서로 다른 인생길을 걸어오다가, 어느 시점에 우연히 만나 연정을 품게 되고, 하루도 떨어지기 힘들 만큼 사랑하게 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 시점부터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단순하고 아름답게 존재했던 이성 관계는 육아 동지이자 가족 공동체, 경제 및 생활 공동체, 서로의 시시콜콜한 습관과 사소한 단점들, 모든 사생활까지도 속속들이 알게 되는 독특한 관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험난한 인생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의미에서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외로운 인생길을 함께 해 줄 유일무이한 내 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구 같아야 할 남편과 헤어지게 되면서 저는 갑작스러운 ‘관계의 상실’을 통해 인생의 단절감, 절망감을 알게 되었어요. 관계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사라지는 충격 속에서 제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헤매고 방황했었지요.
도대체 관계를 시작하고 끝맺는 법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걸까요? 결혼을 시작했으면 이혼이라는 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 왜 아무도 조언해주지 않았던 걸까요. 사업이나 사소한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도 플랜b를 늘 대비하라고 하면서, 정작 중요한 인생의 여정 속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어째서 대비하지 않았던 건지. 자책해보아도, 원망해보아도 소용 없었습니다.
이런 순간에 필요한 것은 실패를 통한 성장이겠지요. 그래서 곱씹어 보았습니다. ‘완벽한 관계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실패하지 않는 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을까?’ 우리가 때로 예기치 않게 만나는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한 걸까요.
우선 ‘관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지요. 10대의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의 저는 세상 끝 어디 쯤에는, 반드시 그 어딘가에는, 저의 말하지 않은 모든 의미를 이해해 줄 완벽한 누군가가 존재하리라 꿈꿨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어느 시점에는 그토록 완벽하고 무결점한 나의 완벽한 반쪽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었었고, 그 사랑이 영원하리라 착각도 했더랬지요. 결혼이라는 불완전한 제도와 관습을 몸소 체험해 본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세상에는 저의 모든 의미와 몸짓와 꿈, 생각, 습관, 단점까지도 이해해 줄 완전체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제 마음을 이해해주고, 저의 말과 의미와 몸짓을 받아들여주고 토닥여줄 수는 없기에, 오로지 단 한 명. 누군가 한 사람쯤은 완벽한 반쪽이 되어줄 줄로만 믿었습니다. 살아보니, 세상에 그런 완벽한 ‘짝’은 없더군요. ‘
다만, 저 역시 상대방에게 완벽한 반쪽이 되어줄 수 없기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에서 조금만 뒤로 물러나 상대와 발걸음을 맞추고, 상대의 호흡을 느끼며, 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늘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만은 아니었지요. 결혼 생활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혼’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돌아온 ‘싱글’이라는 상태로 불완전하고 불균형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그 안에 속한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실제로 마음이 얼마나 잘 통하고 맞는 지와는 관계 없이, 겉으로 아주 단단한 결속체를 맺고 있게 하기 때문에, 실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로 친밀하고 신뢰가 쌓여있는지 그 속내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벗어나, ‘연애’나 ‘썸’ 정도의 불완전한 관계 속에 있어보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의미를 영속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고, 때문에 계속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지금의 제가 새롭게 맺은 관계에 대해 궁금하실 거에요. 사실 제가 선택한 완벽한 관계 찾기의 목표는 ‘저와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그것이 우선이 되어야 했지요. 예전에 어느 유명 작가의 드라마 중에 ‘세 번 결혼한 여자’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녀의 세 번째 결혼 상대는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는 허무한 결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결말도 해피 엔딩의 한 종류였음을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하지만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어서인지, 커피의 쓴 맛이 쓰지만은 않고 달콤함도 안겨줄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어서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모든 이의 인생은 하나의 정답으로 귀결될 수도 없고, 결혼과 이혼은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의 의미에 지나지 않으며, 나의 결혼과 너의 결혼의 의미는 다를 수 있음을 말이에요.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볼 수 있는 그간의 저의 인생에서 내가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고, 진정으로 바라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가 아니라 ‘어떻게’ 가야 제가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력을 다해 고민한 적이 없었음에, 스스로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제라도 저는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다고 느껴지며,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그리고 말해주고 싶어요. 남들에게 발맞추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당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고. 인생의 걸림 길에 지치지 말고 천천히 가다 보면 그 길목에서 당신과 같은 속도로 걷고 있는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결국, 인생이라는 달콤한 여행 길은 관계의 성공과 실패와는 관계가 없는, 당신만의 선물같은 축복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