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독 허용적인 부모라서 그런 걸까, 아이 아빠는 식탁에 앉았을 때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도 못내게 하던데.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대신 치워주는 버릇이 들어버렸다. 이런 태도가 잘못됐다는 걸 교육계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본성이고, 편한데.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숙제다. 하물며 둘이 함께 키워도 시시때때로 고달프고 고민되는 것이 육아인데, 아이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에 대한 결정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한다는 건 한부모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이리라ㅡ
그래서 더더욱 아이 앞에서 흐트러지거나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었다ㅡ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애를 쓰며 버티는 모습들이 아이 눈에는 다 보였었나보다.
어느 날인가 내가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의 뒷모습을 따라오며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ㅡ
아이가 미술 학원에서 그려온 그림에서
아빠는 한가롭게 풀밭에서 꽃향기를 맡고 있었고, 엄마는 거대한 뒷모습을 보이며 홀로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도 꽃 좋아하는데... 그리고 엄마는 왜 뒤돌아 있어?"
"아빠가 꽃을 좋아한대요ㅡ 그리고 엄마는 바쁘잖아요ㅡ 엄마가 저 옷 입고 있었어요. 나는 괜찮아요."
아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나보다. 나는 모르는 것들을 아이가 더 많이 알고 있다. 아이의 시선에 보이는 것은 늘 바쁘고 고달픈 엄마의 뒷모습이었던 걸까.
제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혼자 아이를 키워야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 마음이 애틋해진다.
부족한 한쪽 부모의 역할을 두 배로 더 잘 해주고싶고 남들 못지 않게 지지해주며, 모든 것을 다 해주고싶은 마음이었는데. 알고보니 아이는 자신은 괜찮다며,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부모의 마음을 훨씬 더 깊이 헤아리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앞으로는 그 조급한 마음을 들키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본다. 애쓰면서 앞으로 달려가려하지 말고, 아이의 뒤에서 지켜봐주는 느긋한 어른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한 부모든, 두 부모든, 누구나 제 자식에게는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외롭게 하고 있는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