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자가용

같은 궤도를 공회전하고 있는 삶에 대하여.

by 은비령

"지금 이 순간 연료가 한정된 차를 몰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누구나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곧장 차를 몰 것이다.

인생은 '시간'이라는 한정된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아닌가.

묻겠다. 왜 유독 인생이라는 차를 운전할 때는 가고 싶은 곳으로 곧장 가지 않는가?

심지어는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같은 궤도만 뱅글뱅글 돌고 있지는 않은지."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임승수. 중에서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은 나이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알아차린다.

내가 전형적인 B형이며, 의외로 소년 같은 구석이 많고, 때로 대책없이 무모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자동차를 좋아하는 소년 같은 나로서는,

임승수 작가님의 책에 나온 '인생을 자동차에 비유한 글'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공회전'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른 것들은

'쓸 데 없음. 낭비. 환경 오염. 헛된 일. 에너지 소모.' 등이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관성처럼 틀에 박혀

변화하지 않고 그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은

마치 '자동차의 공회전, 다람쥐의 쳇바퀴, 레고 시티 속의 피규어 하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실 학교에 오래 근무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히던 한 가지의 팩트는

'지금 이 정도의 수업은 내가 아닌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어느 순간, 책에 밑줄 긋게 하고 교사용 지도서에 쓰인 그대로의 문학적 해석을 줄줄 읊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러한 천편일률적인 문학적 해석을 지필 평가의 오지선다형 문답 속에 보기로 넣으면서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누군지 모를 전문가의 의견이 정답인 것마냥 학생들에게 강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것이다.


사색하지 않는 순간부터, 나는 고유한 내가 아닌,

남들이 이미 만들어 온 길을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아니,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무기력한 외판원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주인공 그레고르는 자고 일어나보니, 끔찍한 해충(갑충/벌레)가 되어있었다.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상처가 악화되어 쓸쓸히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시체는 가족도 아니고 가사 도우미 할머니가 쓰레기처럼 내다버렸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내가 아니란 보장이 없다. 겉모습이 벌레처럼 끔찍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공회전 하는 것 같은 의미 없는 삶 속에서 알맹이도 없이 늙어 간다. 언젠가 아무 쓸모 없어진 껍데기는 쓰레기처럼 버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공회전 속에 갇힌 삶.

정해진 궤도 속에서 챗바퀴 돌 듯, 시간 낭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은 어제와 어떤 점에서, 얼마만큼 달라져 있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하루의 시간 만큼 성장해 있을까.

우리들의 성장은 언제, 어느 시점에서 멈춘 걸까.

그리고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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