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전에 필요한 자세

2022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 전을 보면서.

by 은비령

현재 시간 2022.12.6 a.m. 5시 58분.


요즘 이상하게 다시 불면증이 시작됐다.

중요한 일이 있거나, 해결 못 한 난제가 있을 때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오늘 경기는 '에이~ 그걸 어떻게 봐. 어차피 질 거야.' 이런 생각도 솔직히 든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몸이 먼저 대한민국 선수들을 응원하려는 것이었는지 3시 50분에 아무런 저항없이 눈이 떠졌다. 그리고 전반, 후반의 90분 경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세계 랭킹 1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브라질 선수들은 현란한 개인기와 뛰어난 경기 운용 능력, 적절한 임기응변력과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은 부상 투혼, 체력을 회복할 시간의 부족, 그리고 많이 꺾인 자신감 등으로 약세를 면할 수 없었다. 때로 심판이 야속하게도 우리 선수들의 쓰러짐에는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 중에도 교체 투입된 이강인 선수와 백승호 선수가 멋진 슈팅을 만들어주었고, 4:1이라는 점수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마지막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축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축구 경기가 가져다주는 집단적 광기에 다소간의 거부감도 있는 데다가, 국민적 관심에 잠깐 반짝이다가 이내 시들어질까봐 차마 "축구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이야기하진 못했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축구에 대해 보르헤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세계에 상당히 나쁜 일을 했는데 축구처럼 바보 같은 것을 만연시킨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아르헨티나 축구 - 남미 축구의 역사와 문화 (축구대백과, 정윤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8908&docId=3575802&categoryId=58908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우리 선수들이 고군분투하며 경기장에서 쓰러지고 넘어질 때마다 너무 안쓰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이런 훌륭한 싸움과 도전의 과정 속에서 열정과 용기로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한 것이다.



또 하나, 2022 카타르 월드컵의 대한 민국 선수들의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내가 새롭게 감탄한 것은 이 경기를 바라보는 선배이자 해설자분들의 지혜로운 조언과 가르침이었다.


선수로서 경기장에서 뛰는 것과 세월이 흘러 경기장 바깥에서 유경험자로 경기를 관람하는 일은 다르다.

직접 필드에서 부딪치고 경험하며 성장하는 과정도 멋진 일이지만, 모든 것을 경험한 뒤 비로소 얻게되는 통찰적 깨달음과 지혜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위치에 가게되는 것도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설자의 이름을 직접 밝힐 수는 없지만, 그가 경기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쏟아내며 선수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이 벅차고 뭉클했다.


"'경기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경기의 흐름은 한 번은 바뀌게 된다. 그걸 만들어야 한다.)

"지금 지쳐서는 안 된다."(전반전에 이미 4골차로 벌어진 뒤에)

"지난 번 경기때보다는 한 골 더 성장했다. (참고로 브라질과의 지난 평가전 때 우리의 수치는 5:1이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주관적인 응원적 해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훌륭한 감독이나 코치가 된다는 것은 훌륭한 선생이자 선배가 된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소싯적에 공부를 잘 하는 기술을 가진 선수였고, 지금은 그 기술을 전달해주는 선생이 되었다.

인생의 후반전에 선 지금의 시점에서는, 나 스스로 발전해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은 이제 무의미하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자라나는 후배들, 대한민국의 미래인 우리 학생들을 이끌어주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경기를 치르고 있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일을 멀리 바라보면서, 경기장 속에서 쉬지 않고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멋진 해설자님과 감독님, 코치님, 그리고 그 경기를 바라보며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관객들이 있었기에

비록 지는 경기를 했지만, 그것이 실패라고만은 할 수 없는 까닭이 아닐까.


+ 덧1: 연속 4경기를 뛰느라 힘들었을 우리 선수들에게 닭이라도 한 마리 삶아 주고 싶다.

(사위나 아들에게 삼계탕 끓여주는 장모님(어머님)의 심정이 이러할까.)


+ 덧2: 게다가, 우리는 1등에게 졌다. 질 때 지더라도, 1등에게 지는 것이 덜 부끄럽다.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으며 말만 많이 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말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생이라는 자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