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고 자애로워지기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한 태도.
부모로서 또는 교사로서 가장 이상적인 태도는 어떤 태도일까?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발달하면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아직 덜 자란, 미완성의 인격체이기에 그들을 대할 때 순간순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심결에 한 어떤 작은 행동을 그 아이들이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양육 태도나 인성 교육 태도에 대해 사실 우리는 제대로 배우질 못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에는 초등 학교 시절부터 '행복'이라는 과목이 있다고 한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위해 , 어떻게 하면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왜 우리는 손 놓고 누가 해주길 수동적으로 바라기만 하는 걸까.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양육해야 둘다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늘 배워야 할 것이다.
교사가 된 이후로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것은,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는 동등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실상 말이지, 학생보다 교사의 지위가 낮을 때도 많다. 그들은 다수이고, 교사는 항상 져줘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어린 학생들의 미숙한 태도를 다 받아주고 참아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미숙한 태도를 고쳐주는 것도 교사의 몫이고, 잘못된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사의 능력 부족인 것이다. 오죽하면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 했을까.
그렇다고 교사가 학생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거나, 그들이 일방적으로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강요는 아니다. 그러나 지도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권위와 존경이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수 많은 학생들을 공평하게 지도하기가 수월하다. 이 '수월함'은 교사가 편하고자 함이 절대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통제'가 가능해야 학생들이 일탈했을 때 바로잡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학생들에게 한 없이 자애로우면서도, 때로는 칼 같이 엄격한 교사.
그런 교사가 아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때로는 가정에서 받아야 할 무조건 적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도 있고, 때로는 철부지처럼 모든 것을 용서받으며 자라난 아이들도 있다.
모든 아이들에게,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관심을 주되, 때로는 안 될 행동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선을 긋고 행동 수정을 해 줄 교사가 되어야 할 텐데.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훌륭한 선생은 못 된다. 그럼에도 늘 그렇게 해야겠다 다짐은 하고 있으니, 오늘도 아침부터 졸린 눈으로 교실에 앉아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눈빛이라도 한 번 더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오른 손으로 벌 하고, 왼 손으로 안아준다. (유태인 속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