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명절을 무사히 보내는 '사소하지만 은근히 신경쓰이는 거대한 미션'을 완료했다.
언제부터인가
일 년에 몇 번 없어 반가워 마땅해야 할 명절이란 날이
누군가에게는 숨고 싶은 날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치뤄내야 할 관문 같은 것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꼭 한 번은 마주쳐야 할 현실 자각 타임이 됐다.
내게 있어 명절은.. (특히 다시 혼자가 된 이후로는)
어릴 적부터 든든한 내 편이었던 가족들, 일가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행복하기만한 시간이라고 여겨왔었다.
코로나 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3년이나 시간을 보내어서인지
이번 명절이 새롭게 느껴지고 조금은 기대를 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현실은..
역시나 혼자가 된 나는 집안의 천덕꾸러기구나.
'무언가 미완성된, 누군가에게는 감추고 싶은 새끼 손가락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실상 결혼이든 취업이든
다 내 삶이고 내 선택이라지만
왜 아직도 누군가는 '평범한 길'에서 벗어난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걸까.
난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특별히 다른 선택으로 또 다른 혼란 속에서 헤매이고 싶지 않은데.
오로지 나의 힘으로
명징하게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싶건만.
글쎄, 아직은 인생을 끝까지 다 살아보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어디 내세우기에는 혼자보단 둘이 낫겠지?
아이 셋을 낳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동갑내기의 올케를 바라보며
나의 삶과 그녀의 삶 중 어떤 삶이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삶일까 문득 생각해 보게 된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무언가 동정어린 눈길들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철렁 하는 순간들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굳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아요.'라고 변명하고 싶지도 않고.
분명한 것은
오랜만에 마주한 친척들 속에서
행복하기만하지는 않았다는 점.
아직도 여전히,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시선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구나. 라고 투명한 벽을 느꼈다는 점.
명절은 일 년에 두어 번.
그 중에서 가족 식사 타임은 하루 중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왠지 내 삶을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매우 거북스럽고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그래. 남을 신경 쓰며 산다는 것은 이토록 피곤한 일이다.
더구나 남이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며 산다는 것은
때로 나 자신을 너무 초라하고 위축시키게 만든다.
내일은 좀더 일찍 일어나 산책이든 조깅이든 힘차게 해봐야겠다.
구겨진 종이처럼 구석에 박혀있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누가 뭐라든, 내 인생은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