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낮엔 너무 덥지만 그래서 오히려 밤에 시원하다.
더위에 적응한 건지 전에는 밤에도 끈적거리게 더웠는데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진다.
만 걸음 걷겠다고 나왔다.
둑방길까지 가는데 천 걸음.
‘오- 생각보다 천 걸음 쉬운데?’
초심자의 행운.
첫 둑방길의 끝에 다랐을때 하천 물냄새와 나뭇잎 향에 주변을 둘러봤다.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왕복 세 내번째 슬슬 지루하다. 3000걸음쯤 됐다.
‘다른 길로 걸어가 볼까?’
과거의 나였다면 아마 샛길로 빠졌을 터다.
‘아냐. 그냥 왔다 갔다 하자’
초반에 가쁘던 숨은 어느새 진정됐고 이제 5000걸음이 넘었다. 이제 걷는 건 내 의지를 벗어나 다리가 알아서 걷고 있다.
‘그 아저씨 집에 가셨나 보네’
걷다가 몇 번을 마주친 아저씨가 안 보인다.
7000걸음을 향하면서 생각한다.
‘집에 가는데 1000걸음 정도 되니까 9000걸음쯤 방향을 틀까. 아니면 주변 아파트 단지를 돌까’
다리가 뜨거워졌지만 근육이 알아서 움직인다.
8500걸음쯤 놀이터에 고양이 그림자가 보인다.
“이리 와 쭈쭈쭈”
나를 빤히 보길래 손타는 고양일 줄 알았는데 멈춰서 주저앉아 손을 내미니 도망간다.
일어나 보니 걷고 있던 길을 벗어났다.
‘그래 집 좀 돌아가면서 채우지 뭐’
챙긴 물도 다 먹고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다르고 오는 길 다르다고
집에 오는 길은 축지법이다. 결국엔 단지 내에서 팔자 그리며 기어코 만 걸음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