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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Mar 09. 2021

시험관 시술을 통한 인생 수업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예전엔 당연하던 것들이 이젠 당연하지 않은 것이 참 많다.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생활이 그렇고, 물을 사 먹게 된 것도 그렇고, 임신도 그렇다.


1960년대 이후에는 경제 발전과 근대화가 진행되고, 산아 제한 중심의 가족계획 정책, 여성의 사회적 진출 증가로 인한 출산나이 증가, 출산 및 양육 비용 증가 등으로 출생률의 급격한 감소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1978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탄생되었다.

자연임신만이 가능했던 시절, 높은 출생율을 억제해보려 산아 제한을 했다는 것이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임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요즘 주관적인 관점에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햇수로 7년차를 맞는 우리 부부는 인공수정을 건너뛰고 지난달부터 시험관 시술에 돌입했다. 나는 병원에서 '난소기능 저하(일명 난저)'라고 진단을 받았지만, 생리불순이나 기관장애 등이 전혀 나타난 적 없고 평소 체력과 건강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에 첫 시험관 시술에도 성공할 수 있으리란 작은 기대를 품었다.


난자채취를 위한 수면마취에서 깨어난 후 간호사가 '난자채취 후 설명서' 종이를 들고 와서 설명해주는데... '오늘 채취된 난자는 0개입니다'라는 선명한 글씨가 보였다. 채취된 난자가 0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임신을 절박히 원하는 여느 난임여성들과는 다르게, 조금 더 느긋한 마음으로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시험관 관련 정보도 부러 인터넷 여기저기 뒤지며 안달하지 않았고, 10여일간에 걸친 자가주사도 감정의 동요 없이 잘 해왔고, 시험관을 하다 아기가 안 생겨도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말리란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자채취수 0개'는 청천벽력처럼 느껴졌다. 과배란 약 투여 시 난포(난자를 싸고 있는 세포)는 대개 10개 이상 자라기 마련인데, 내 경우는 현저히 적은 갯수인 3개 중에 난자를 채취하는 것이라 절대적인 숫자는 적었지만 모두가 공난포일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더 비극인 것은 시험관 시술이 배아이식이 동반되어야 시술로 정부에서 인정하기 때문에, 나같은 전체 공난포의 경우는 지금껏 지원받은 병원비와 오늘 시술비용도 모두 '자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참고 있던 눈물은 주치의의 설명을 들으면서부터 '뻥' 터져서,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 돌아와 엄마와 통화하면서까지 내내 이어졌다.


내가 확신했던 임신과 관련한 여유는 애초부터 내게 없었던 걸까? 



눈물의 근원

다음날 출근을 위해 세면대 앞에 선 내 얼굴을 보고서 가슴이 철렁했다. 퉁퉁 부은 눈과 얼굴이 '내 여유는 내 의지'였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뭘까, 내 눈물의 근원은.

이번에 시험관 시술이 실패한 것에 대한 실망감 뿐만은 확실히 아니었다. 시험관 과정 중에 굉장히 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슬펐던 이유는... 내 난소가 애초부터 난자를 정상적으로 생산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그간 자연임신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 나일 거라는 것, 선택적 딩크족이 아닌 대안이 없는 딩크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노력의 댓가가 허무하더라도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 앞에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참 막막한 일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기대를 무너뜨리는 실망감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서도, 계속 시험관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비록 결과에 실망할지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리라'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참 멋지다는 것도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임신에 내가 목맬까봐, 결과를 너무 기대할까봐, 식생활부터 생활 패턴까지 임신 준비를 위해 무엇 하나 바꾸지 않았다. 기도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더 나은 노력이 있을 수 있었는데.


'될 때까지'가 아니라 '한 번은 더' 시험관을 해 보겠다는 지금 나의 마음도, 다른 방식을 사용하는 주치의를 찾아볼 생각이 없는 것도, 겁 많은 아이 같다. 미리 실망할 결과에 대비하는 비겁한 마음이 아닌가.



마음이 갈 길을 잃은 것 같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다. 

애초에 내가 정말 아이를 원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모든 난임 여성, 심지어 유산을 거친 분들, 임신하고서도 어려운 시기를 보낸 분들, 아픈 아기 때문에 힘들었던 많은 분들의 그 눈물의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이는 연습, 본격적인 인생 수업에 돌입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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