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회사 선배가 있었다. 대리로 있던 그는 오래 있지 않아 이직하며 팀장이 되었고, 텃세가 심한 그 회사에서 상사 및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인정받고 곧 본부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CEO가 그를 정말 총애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30대 중반이었다.
지금 와서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나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었다. 뚜렷한 존재감. 그는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굳이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나 싶을 정도였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후배가 있으면 커피를 사 주며 그의 어려움을 보듬어 주고 잘 적응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다소 내성적인 나마저도 그와 친해져서 메신저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의 인간관계 면모가 정말 특출 나다 생각했던 지점은, 동년배뿐만 아니라 나이차가 크게 나는 상사들까지도 스스럼없이 대하고 관계를 맺을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과 사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만나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는 상대방의 결핍이 무엇인지, 갈망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만나기 때문에 누구든지 깊은 대화가 가능했다.
인적 자원이 뒷받침되자, 그는 다양한 '진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이 정보를 이용하여, 일을 대할 때 표면이 아닌 이면까지도 살필 줄 아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의 needs를 채워주니 그의 초고속 승진은 당연한 것이었다.
단순히 보고서를 잘 쓰고 행정처리를 잘하는 수준의 한계는 '대리'급이다. '과장'급부터는 관리직과 직원들 사이를 조율하고 실무를 전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리드하는 능력의 유무에 따라 만년 과장으로 남느냐, 간부의 길로 가느냐가 갈려진다.
단순히 표면에 드러나는 업무의 목적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해야 하는 발단과 그를 둘러싼 이해관계까지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여러 관점에서 일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전혀 새로운 결론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 책에서는 이런 능력을 '감각'이라고 표현한다. 참으로 적확한 말이다. 이런 감각은 기술과는 달라서 단시간에 연마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점점 보편화되고 과잉이 되어 가치가 떨어지고, 감각이 있는 사람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한다.
감각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감각의 알맹이가 무엇인가에 관해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구체와 추상의 왕복운동'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
추상의 힘 -> 전체를 보는 데서 -> 본질과 사유를 깊이 파고드는 힘 -> 감각적
구체의 힘 -> 부분을 보는 데서 -> 기술을 이용하여 문제를 세분화하는 힘 -> 논리적
내가 생각한 추상과 구체의 의미는 이러한데, 나에게도 지금 필요한 능력이 바로 추상의 힘이다. 1년 후 퇴사를 목표로 세운 내가 꼭 지금 진급을 목표로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회사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는 있다. 나의 관점과 의지에 따라.
KPI는 늘 100% 달성하고, 주어진 일을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했지만 전체를 조망하고 진짜 문제의 옥석을 가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 회사에 기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대충 주어진 일만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변명이고, 실상은 내가 배우고자, 얻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아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회사 CEO는 대부분의 직원이 혀를 내두를 만큼 핵심을 짚는 것으로 유명한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는 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질문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매일 보는 것에서도 의미를 궁금해했는데 이를 테면 점심을 먹는 건물 앞 조형물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내 주변의 세계를 보고 관찰하는 힘, 늘 why를 품고 사는 자세, 곰곰이 해답을 헤아리는 습관이야말로 지긋지긋한 회사를 역동적인 공간으로, 반복적인 일상에서 새로운 것을 그려 보고 시도할 수 있는 인생으로 이끌어 주는 KEY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눈에 보이지만 굳이 내 일이 아니고 문제가 커서 외면했던 이슈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색해 보아야겠다. 무언가 내면의 변화가 생활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