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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04. 2022

10년 만에 깨닫는 직장의 목적

'저, 사직합니다.' 곱씹을수록 너무 멋진 그 말.


한 회사에서 만 10년을 채운 올해,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퇴사 욕구 때문에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해서 그 '욕구'의 근원을 따져보았다.


나는 퇴사를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하여, 회사가 내 '자아'를 실현시켜주지 못한다는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게 꼽고 있었는데... 가만, 누군가의 자아를 실현 혹은 완성시켜줄 수 있는 회사가 존재하나?

'실현시키다' '완성시키다'는 말은 목적격의 의지가 없어도 주체가 100% 완성한다는 의미로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그냥, 내 인생 내가 능동태로 살지 못해서 삶이 지루해진 것이다. 그 이유는 고리타분한 회사생활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고. 매일 지겹게 출근하는 회사를 그만두면 뭔가 '뿅' 하고 새로운 인생이 나타날 것 같은-내게 주어진 엄청난 자유시간을 굉장히 열정적으로 쓰며 삶을 개척할 것 같은-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이직이 아니라 이런 사무직 하고는 영원히 byebye 하고 싶은데, 그 이후 긴긴 인생 무얼 해야 할지 탐색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 본다.

회사에서 내 쓰임은 다 했나? 회사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뤄보았나?

회사를 다니는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생계가 가장 우선이다. 어떤 영역에서 실력을 닦고 그 분야를 연마하는 것, 그를 통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도 일반적인 목적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내가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놓치고 10년을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안녕과 안부를 궁금해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고, 그의 하루에 조금의 행복이라도 선사하는 것.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인맥'을 쌓아나가는 것.


INTJ형인 인간인 나는 맥락과 목적 없는 'small talk'가 참 어려운 사람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고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친분 없는 사람과 카페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심지어 친한 동료와도 대화의 맥과 흐름이 뚝뚝 끊길 때가 많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 그의 관심사를 통한 대화 주제를 매끄럽게 이어나가지 못해서이다. 


당신이 나에게 준 만큼 나도 돌려준다는 호혜주의에 기반한 관계가 아닌, 그냥 그 사람이 안녕하기를 바라고 마음 써주고 애써주는 그런 관계가 회사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것을 새롭게 자각한다. 무려 10년이었는데.


결국, 퇴사하고 싶은 이유에는 '의미 있는 관계가 거의 없는' 메마른 사막 같은 곳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힘든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린치핀>이라는 책에서는 관계를 통한 삶의 변화를 이뤄나가는 모든 과정을 예술로 표현한다.

예술은 자신의 인간성을 활용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싶어 하며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사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예술은 어떤 작업에 종사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냐 하는 문제다.



직장은 월급만 벌면 된다는 1차원적인 생각에 머물렀기 때문에 더 급속도로 지치게 된 것이다. 팀장님 어머님의 척추 시술 이후 근황은 어떤지, 앞자리에 앉은 대리가 대학원 학업과 아들 둘 키우는 가정생활 양립에 어려움은 없는지 진지하게 걱정하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빌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내 인간성을 돌아보게 한다. 피상적인 물음, 피상적인 걱정, 이를 테면- '어서 빨리 좋아지셔야 할 텐데요'-가운데 나는 내 동료들 뿐만 아니라 나도 시들게 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본격적인 퇴사를 서서히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회사 생활에서 '예술' 활동을 통해 관계 맺음으로 인해 얻는 새로운 만족을 경험해 보려고 한다. 쓸데없는 헛소리로 'small talk'를 늘어놓겠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말에 진심을 담아서 그의 안녕을 빌어본다는 것이다. 그 관심이 돌아오기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쓰다 보니... 이거, '추앙'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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