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보고 싶다. 사랑해야 한다.
광대들만은 죽고 사는 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우리가 잘 아는 방식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의 법칙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러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나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그들을 내 곁으로 불러올 수 있었다. 킹콩이든 프랑켄슈타인이든 상처 입은 붉은 새떼라도. 그러나 엄마만은 안 된다. 그러기에는 내 상상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청춘은 너무 아름답지만 그래서 잔인하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 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함으로써 당신의 생을,
누군가의 생을 의미와 기쁨으로 채우라고.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을 썼던 작가는 '로맹 가리'로 나중에 밝혀졌다. 로맹 가리는 권위 있는 문학상을 이미 한 번 수상한 작가였지만, 입에 권총을 물고 자살했다.
실력도 평단에서 인정받은 그였지만, 정작 그도 사랑에 목마르고 갈급했었던 걸까. 소설의 말미에서 알게 된 작가의 생의 마지막 모습과 소설의 주제가 뒤얽혀 소름이 돋을 만큼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