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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Oct 26. 2022

Stranger가 Someone이 되기까지

나는 식사 이후에 체기로 고생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할 때면 대부분 그랬다. 관계가 거의 없는 다른 팀 팀장님이 나와 우리 팀 차장님에게 밥을 사 준 일이 있었는데,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위장 안이 공기로 가득한 느낌이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속이 거북했다.

처음 만나는 남편 지인 부부와 식사 뒤에도 집에 와서 소화제를 찾아 먹고 편한 자세를 찾아 한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만남의 부적응자'라고 어림짐작하고 그런 만남을 웬만해선 만들지 않고 지내왔는데, 얼마 전부터 뉴페이스와 밥을 먹어도 소화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 만남 자체가 편안해졌다. 심지어 새로운 만남을 내가 만드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 건물의 같은 층에는 6개의 부서가 같이 일하는데 복도나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서로 통성명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필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 조직도에서 얼굴을 찾아보더라도 실물을 대하면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내 조직도 사진조차도 10년 전 사진이니 말 다했다) 어떤 부서의 누군지도 모르니 인사는 늘 형식적이었고, 우리가 건네는 '안녕하세요'는 안부를 묻는 인사가 아니라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 어색하니 덧붙이는 추임새 같은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선을 피해 어물쩡하게 서서 손을 씻는 A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헤어스타일이 도전하기 어려운 스타일인데, 굉장히 잘 어울리시네요."
"아, 이거요? 제가 안 가던 미용실에 가서 펌을 했더니 실패해서 원래 가던 미용실로 갔더니 이 스타일을 추천해 주시더라고요. 너무 과감해서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아요. ^^"


마치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 보따리를 쏟아놓는 A.

30대 후반 내 또래의 A는 청담동 단골 미용실에서 히피펌을 시도한 결혼 7년 차 새댁이었다. 임신을 위해 몇 년 전부터 부지런히 애쓰다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해서 아이에 대한 갈망이 큰 상태였는데, 다니고 있다는 병원이 내가 예전에 시험관 시술을 했던 그곳이었다. 공통점이 많아 화장실에서도 대화가 물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자, A와 점심 약속을 잡고 헤어졌다.



그 이후 나는 화장실을 작은 사랑방처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0팀의 000인데요. 자주 뵙는데 인사를 처음 드리네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0팀의 000입니다. 반갑습니다. ^^"


40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올백머리를 하고 약간은 무기력해 보였던 B는 나와 멀지 않은 동네에 살고 있고 출퇴근길 차 막히는 시간을 피해 유연근무를 하고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먼저 인사를 해줘서 마음이 따뜻했다는 멘트까지 덧붙이며 활짝 웃어 보인 B는 생각보다 쾌활한 사람 같았다.



"안녕하세요. 짧은 재킷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굉장히 트렌디하시네요!"
"안녕하세요~ 저번에 아웃렛 갔다가 한 번 사봤는데 다행이네요!"
"키가 크셔서 잘 어울리세요."
"하하. 키는 과장님도 크신데요. 감사합니다."
"출근은 멀리서 하세요?"


C는 눈꼬리가 처져 있고 마른 체형에 약간은 까칠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패션센스에 대해 칭찬을 듣고 매우 수줍어하며 곱게 접는 눈이 선했다. 안산에 사는 C는 요즘 유행하는 숏재킷도 멋지게 소화할 만큼 예쁜 옷 핏을 선보였는데 목소리가 서문탁처럼 낮고 갈라져 뭔가 삶에 그녀만의 독특한 역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 직원이 모이는 행사가 있던 날, 내 옆자리에 앉은 D는 예전에 사내 동호회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D는 우리 회사에서 뛰어난 미모로 나름 주목을 받았었는데, 잦은 부서 이동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부서에서 막내뻘이면서도 자기 일 외엔 모른척하고 손도 안 대는 정 안 가는 깍쟁이'라고 했다. 직급에 비해 회자가 많이 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대부분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꽤 도도하고 차가운 인상이었던 그녀가 내 앞자리에 앉은 직원과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내가 안부를 건넸고, 중요한 행사 자리에서 키득대며 수다를 떨던 우리는 식사 약속을 잡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대화 꽃을 피우다 정신을 차려 보니 12시 50분. D는 나와 몇 시간이고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기질의 사람이었다.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퇴근 이후에도 늘 공부를 하는 자기 주관이 또렷한 사람. 얼마 전 치른 경제 관련 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해서 자기 자신에게 1박에 100만 원짜리 호텔을 누리는 호사를 선물했다는 그녀는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지적 욕구가 풍부해서 늘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부지런히 열어놓는 그녀는 나와 대화의 결이 잘 맞았다.


현 부서에 대한 만족감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지금 하는 일과 부서에 만족한다'며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고백하는 그녀는 어려운 고비를 넘고 넘어 단단해진 것 같았다. 5년 정도 인간관계와 개인적인 일 때문에 불면과 불안, 우울로 힘든 시간을 겪어 왔다고 했다. 나에게 자세한 내용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전 부서에서 한 직원이 주축이 되어 D를 따돌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힘든 일은 항상 한꺼번에 온다며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웃는 그녀를 보며 '모든 사람은 각자 나름의 고독한 싸움을 하는 중'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그냥 우리 회사 직원'에서 '김 과장님'이 되고 김 과장님에서 '나처럼 불면의 밤을 통과해본 동지'가 되기까지, 그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냥 먼저 가볍게 인사하는 것뿐이었다.


그 사람의 외형, 직급, 그 사람을 둘러싼 편견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인생이 궁금해지면 진심이 닿아 소통이 일어난다.



내가 새로운 사람과의 식사를 늘 소화시키지 못했던 이유는, 상대에 대해서 관심 있는 척 애쓰느라 그랬던 거였다. 예전의 나는 누구에게도 흥미 이상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무심하다는 한 마디로 대변했던 나의 성격이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자기 중심적 사고를 내려놓으니, 상대가 궁금해지고 사랑스러워지며 애틋해진다.

내가 상대처럼 지극히 평범한 만큼,

상대는 나처럼 지극히 존귀한 사람이니까.


남은 인생 다정(多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의 잔인하고 이기적인 면을 알더라도 선한 본성을 믿고 관계를 맺고 싶다. 혹여나 실망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상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갖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낯설었던 누군가에게 장미를 건네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장미를 건네는 손에는 향기가 남는다."
자신의 기쁨은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고, 다른 사람의 기쁨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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