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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Nov 28. 2023

유난히 쪼그라드는 오늘

한 번은 지칠 수 있잖아

"자꾸 쪼그라들지 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드라마에 나오는 수쌤의 응원이 필요한 날이다.



요즘따라 더 붐비는 퇴근길 지하철 구석에 간신히 서서 요즘 읽고 있는 <북유럽 신화>를 꺼낸다. 하루종일 컴퓨터를 봐서일까 눈앞의 글씨가 번져 한참을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근 난시가 심해져 간 안과에서 '노안' 진단을 받고 돋보기도 맞췄지만 익숙하지 않아 놓고 다녔다. 돋보기를 들고 다녀야 할 정도로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온다. 그래도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 책에 푹 빠질 무렵 카톡이 온다.


"꼬마화가 저녁 안 먹는대"


엄마의 메시지다. 순간, 나더러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울컥 올라와 명치를 누른다. 이미 아침부터 수 없이 엄마의 카톡을 받은 터였다. 가끔은 엄마가 알아서 결정하셨으면 좋겠는데... 소소한 거리 하나하나 다 카톡을 보내는 엄마가 버거워진다.


그러다 다시 정신이 든다. 혼자 편하게 살 수 있는 엄마에게 의지해서 사는 건 나 아닌가. 엄마의 노후에 끼어든 건 나다. 게다가 할머니를 무시하는 손녀딸까지 맡기고 있는 처지아닌가. 물론, 우리와 함께 살면서 엄마의 삶이 풍요로워진 것도 있긴 하나 검소한 엄마에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갈 곳 없는 나와 손녀를 챙기시는 것일 뿐. 그런 엄마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다니.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도 철없음에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진다.


오늘 왜 이러지? 모르겠다. 오늘은 한껏 블루에 빠져 보자.



아이의 등교 거부로 인한 폭풍이 몰아치던 6개월 간 나도 모르게 나의 몸과 마음은 약해져 갔다. 코로나 시기에도 마스크 끼고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며 만보를 채우고 주말이면 산에 오르고 캠핑을 다니며 채웠던 근육과 체력은 어느새 바닥이 났다. 얼마 전까지 나름 동안이라는 칭찬을 받았던 외모도 초라하게 늙어버린 40대 중반의 중년이 되었다. 아이 문제로 힘든 와중에도 나를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끊임없이 잘될 거란 주문을 외우고, 좋은 책들을 보며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를 채찍질했다.


그런데, 이제 내 몸과 마음이 조금 쉬고 싶다고 한다. 우울의 옷을 간신히 벗은 아이는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졌다. 그렇게 바라던 게 이루어졌는데, 마음은 간사한지라 이젠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한다. 매일같이 이거 사달라, 저거하고 싶다, 결제해 달라.. 끊임없는 요구에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이다.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 걸까? 차분히 생각해 보고 싶은데,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생각할 틈이 영 나질 않는다. 그나마 내가 한만큼 인정받는 직장에서만큼은 일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이의 무사 등교까지 수없이 주고받는 엄마와의 카톡과 하교 후 이어지는 아이의 요구, 내가 해야만 할 일들, 부족한 시간에 그냥 쪼그라든다. 아직은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쉴 수 없다.



꽤 오래전에 한 치아 보철에 구멍이 났지만, 치과에 갈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다시 일상을 보내게 되자, 방에 숨은 기간의 후유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충치가 무려 8개가 생겼고, 한 개는 간신히 뿌리를 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치과는 외할머니가 같이 가주실 수 있었지만, 엄마도 한 달에 걸쳐 백내장 수술을 두 번 받으시는 바람에 휴가 내어 엄마 병원과 아이 치과를 다녀야만 했다. 그렇게 몇 주 기다려 오늘 치과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새 보철을 다듬기 위해 누워있는 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부정' 쪽에 서 있는 나 자신이 보인다. 그동안 '긍정' 까진 못 데려와도 중간에 서 있기 위해 노력했는데 오늘은 잠시 떨어져 '부정'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 본다.


"나야, 많이 힘들지? 남한테 피해 주길 싫어하는 너는 혼자 많이 앓아. 겉으론 참 단단한 사람이지만, 너의 힘듦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삭히고 또 삭히지. 네가 낳은 자식 끝까지 책임지고 싶고, 혼자 남은 엄마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늘 해주고 싶은 것만 많았지. 그런데 왜 그렇게 쪼그라들까? 너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니?"



치과 치료가 끝나고 터덜터덜 집에 왔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집에 도착하자 조금은 마음이 펴지는 듯하다. 그러나, 가방도 못 내린 나에게 이거 가입해 달라. 결제해 달라. 해준다더니 왜 안 해주냐. 요즘 살이 쪘으니 자전거 타러 가자. 끊임없는 요구에 아이가 일상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뭐든지 다 감내할 수 있다는 이전의 의지는 버거움에 다시 쪼그라든다. 아이가 아플 때, 그때의 마음을 떠올려야 하는데 말이다. 나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걸 깨닫는다.


잠시만 쉬면 나아질까. 아니면 또 내 마음가짐을 고쳐먹어야 할까. 좋아하던 걷기도, 등산도, 피아노도 다시 하고 싶은데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덩그러니 자리만 차지하는 피아노는 어제 중고장터에 팔아 버렸다. 2020년 나의 생일 선물로 장만한 피아노, 그렇게 좋아했던 피아노가 떠나는데 오히려 후련함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해야 할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기에,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음에 힘이 들었던 걸까.




늙어가는 부모님과 커가는 아이를 챙겨야 하는 막중한 책임과 점점 지쳐가는 나 사이에서 책임감을 선택하고,힘들다고 쪼그라드는 사십 대 중반의 나를 오늘은 달래주고 싶다.


이 와중에 나 자신은 힘들었지만, 그 누구에도 피해를 주지 않은 사실에 안도한다.


성인이 된 아이가 독립하고, 후련하게 산티아고를 걷는 오십 대의 나를 상상해 본다. 어설픈 영어로 그 길을 찾는 사람들과 와인 한 잔 하며 호탕하게 웃을 그날을 떠올려 본다. 이렇게 쪼그라드는 나를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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