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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n 06. 2019

길치; 13년만의 구직, 쉽지 않다.

백수의 자기 다짐

슬슬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그 동안 남의 이력서 검토하는 것이 힘들기만 했었는데..

막상 내 것을 써 보니 몇 십배는 더 힘들고나.. 게다가 경력이 많으면 채울게 많을 줄 알았었는데 써 보니 너무 고인 물로 보이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고 줄이자니 한 게 없어 보이고 애매하다. 이력서에 "이건 이러이러 했어요~" 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달 수도 없고. 나를 포함 많은 구직자들이 이런 고민을 했었겠지..


여튼 내 코가 석자인 이 상황에 예전에 보다 지쳐 대충 본 이력서는 없었는지, 그 분들의 노력을 내가 대충 넘긴 건 아니었을지 오지랍이 발동 되어 살짝 걱정도 해본다.



"일을 쉬니, 홍익 인간이 되다"

오랜 만에 집에 있으니..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다.

물론 집에 우환이 있었으니 "행복"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고집이 세고 엄마가 그리운 아이와 한판 씨름을 하던 친정엄마는 내가 집에 있음으로써 모든 육아에 대한 피로와 책임을 내려놓게 되었고, 제일 무섭지만 잘 맞는 엄마가 그리워 불안한 심리 상태를 갖고 있던 딸은 내가 집에 있음으로 인해 굉장히 안정된 아이가 되었다. (여전히 말썽은 기본 옵션이지만요)

그 동안 일을 마치고 들어왔을 때 지친 엄마의 하소연과 땡깡 브리핑은 나의 어깨를 한 없이 꺼지게 하는 요인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번 아빠가 쓰러지시고 하늘나라 가시기까지 40여일 간의 시간이 흐른 후, 정말 여자 셋이 버텨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다행히 큰 무너짐 없이 이 상황을 모두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아이를 통해 여자 셋의 의미를 약한 존재들의 모임이라기 보다 더 결속력 강하고 디테일과 미적인면으로도 전보다 나아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자꾸 아빠가 그리워지는 상황에 "셋이 잘 살아보자! 이 중심은 가운데 내가 잡아야지!" 하는 책임감에 긍정적으로 끌어가려 더 노력 했었다.


야물고 똑 뿌러진 우리 엄마라도 아빠의 서류를 처리하는 건 많이 힘들기에 내가 비서처럼 따라다니며 아빠 사후의 일을 같이 처리하고, 석사 학위 취득 조건인 학술대회 발표도 하고, 지금 듣는 수업들도 잘 마무리 하기 위해 열심히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 시간들은 아이를 챙기는 시간 외이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엔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또 학원에 데려다주는 역할까지 모두 다 내가 케어할 수 있는 범위내에 두었었다..


이렇 듯 , 딸과 엄마의 역할을 부지런히 하다 보니 친정 엄마와 딸의 행복도는 높아진듯 보이고, 심지어 딸은 나에게 회사 안다니고 장사를 하면 안되겠냐고 한다. 커피숍을 한다거나 극장에서 알바를 하라고 한다.


허허, 미안해요. 나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요.



"그러나, 멈춰 있는 것 같다."

퇴사로 인한 고민을 했던 2월부터, 아빠 일, 그리고 장례.. 그리고 집안일을 처리 하다 보니 겨울에서 여름이 되었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간간히 책도 보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지만 일을 하면서 받는 자극과는 비교가 안 된다.


성취감이 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이었던 것인가.. 힘든 엄마를 챙기고 아이를 챙기며 보람있긴 한데..

이 모든 일이 끝난 저녁 시간이 되면, 너무나 힘이 빠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느낌이 든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의 힘들단 푸념은 배부른 소리로 들리고, 가정주부 친구의 말은 일부러 외면하고 싶어진다. 여기도 저기도 끼기 힘든 현재의 나의 귀는 사회부적응 귀가 되었다.



"그래도, 이 시간이 그리워지겠지"

아직 아! 여기야. 하는 곳을 못 찾았다. 누가 떠먹여 주기 전 내 맘에 드는 회사를 고르고 싶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곳, 그런 곳을 찾을 거라 믿는다.


열심히 살았고 일에 대한 옳은 가치관과 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기에 나와 합이 맞는 (우리 교수님 표현을 빌려요) 그런 곳이 곧 나타나리라 믿는다.


그러면, 아이의 일상을 함께 할 수 있고, 엄마를 돌볼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참 아쉬워지겠지. 그러니 나는 떨어지는 자존감을 억지로라도 부여 매고 나를 믿고 딸과 엄마를 믿고 버티며 시간을 알차게 잘 써야 한다. 내가 건강하여 모두 다 챙길 수 있음을 감사하며..



"번외: 버킷리스트는 그만 비우기로"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것, 사고 싶었던 것이 (참) 많았다.

영어 공부, 제2 외국어 공부.. 아이패드 프로, 전기 자전거 등등


요 근래들어 슬슬 하나씩 하고 있긴 한데.. 하다 보니 버킷 리스트 비우다 버킷 들고 동냥 하게 될까 걱정이 된다. 현재 상황에 맞춰 조금씩 조절해 보기로.. 힘들다고 감정적 소비 하지 않기로 맘 먹어 본다.


다만, 전기 자전거는 좀 필요할 것 같다 :)




일 벌이기 대장인 나는 엄마를 닮았나 보다.

집수리가 꿈이었던 엄마와 나는 슬픔과는 별도로 집수리를 강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리 기간 동안 원룸 생활을 3주간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방보다 좁은 공간에서 셋이 어떻게 알콩달콩 또는 옥신각신 지낼 지 ..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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