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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Oct 03. 2021

드디어 두 발 자전거 대전 종전!

용기와 인내에 박수를!

될 듯 말 듯.. 차라리 포기를 했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했던..

알코올 없인 떠올리기 힘든 딸의 두 발 자전거 배우기!


안타깝고 답답하고 서럽고 억울하던 3년여의 시간.. 

당시를 생각하면(바로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힘든 것뿐이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니까..

용기를 낸 딸을.. 잘 참은 나를 칭찬해보고자 글을 쓴다.



[배경 설명]

내가 자란 동네는 언덕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 힘든 환경이라 크면서 자전거를 가질 수도 타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게 못내 아쉬워서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딸은 자전거 정도는 타보면서 크면 좋겠다 싶어 근처 성북천까지 들고나가 딸이 탈 수 있게 했었다. 그렇게 타던 자전거의 세발은 네발이 되고 네발은 두발이 되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는데..



제1차 두 발 자전거 대전

2018년, 아이가 8살이 되자 타던 자전거(보조바퀴 달린 네발 자전거)가 너무 작아 보였다. 힘차게 페달을 굴리면 핸들에 무릎이 닿는 걸 보고 드디어 두 발 자전거를 탈 때가 되었구나.. 하고 큰맘 먹고 자전거를 사주었다. 그러나 분명 아이 또래가 탈 수 있는 사이즈라 하였는데 마른 아이에겐 너무나 무겁고 큰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묵히고, 9살이 되자 아이는 부쩍 자전거를 타고 싶단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게 하려면 자전거를 번쩍 들어 계단을 내려가야 하고, 끌고 횡단보도를 서너 개 건너야 그나마 안전한 도로까지 갈 수 있다. 가는 동안 다리가 몇 번 긁히는 것은 기본 옵션.


그래도 나 아니면 누가 하나 싶어 힘들어도 나갔는데..

나가는 수고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이는 두 발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쉽게 타게 될 거라 생각했던 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중심을 잡을 수도 없고, 페달에 발을 올릴 수도 없고.. 그냥 아예 감을 잡지 못했다.


나도 자전거를 탈 줄은 알지만 가르쳐본 적은 없었고..

되는대로 페달을 굴러! 힘차게 굴러! 용기를 가져! 앞을 봐!라고 외쳐봤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아이에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주위의 조언대로 밀어주다가 놓아보기도 해 보았지만, 내 체력이 버티질 못했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는 이제 막 배우는 9살 아이에게 그다지 안전하지 않았으며 우리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었다.


결국, 우리는 두 발 자전거 가르치기, 배우기에 실패했다.


아이는 감을 잡지 못했다.

나는 그 감을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아이는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름 노력하는데 내가 체육전공도 아니고.. 무엇보다 몸이 힘들었다. 가르쳐줄 사람이 나뿐이라는 게 속상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좌절하던 중..

너무 감사하게도 아이의 대모님이 손을 내밀어주셨다.

대모님의 두 아이들의 자전거를 성공적으로 마스터시킨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으신 남편분을 모셔온 것이다.


대모님 남편분은 오시자마자 아이의 자전거를 살펴보았고, 뒤에 잡을 곳이 없다며 자전거를 싣고 가 보조 안장을 달고 오셨다. 그리고 여자분들은 커피 마시고 오라고 떠밀고,  아이와 둘이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하셨다.

처음이다.
누군가 내가 아이를 맡아줄 테니 커피를 마시고 오라는 상황..
늘 혼자 아등바등한 게 익숙한데.. 처음 받아보는 배려에 낯설고 큰 감동을 받았었다.

대모님과 그분의 지인분들과 커피 한잔 하고 있을 무렵..

대모님이 방금 전송받은 동영상을 보여주신다.


아이가.. 

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며칠이 지난 후,


자신감이 붙은 아이가 감을 잃기 전에 근처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자전거를 타러 갔다.

아이는 익숙하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나는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신 학교의 관리자..

"여기 자전거 타시면 안 돼요. 오늘은 봐드릴 테니 다음엔 자전거 갖고 오시면 출입 못하세요"

"아.. 네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연습할 공간을 잃어버리고, 장마가 왔다.

그리고 가을이 오고 나는 새 회사에 취업해서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이 시작되었다.




제2차 두 발 자전거 대전

첫 번째 도전,

두 발 자전거를 성공적으로 탄 지 2년이 흐른 어느 날 아이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늘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유튜브 보는 게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밖에 나가고 싶다니..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 2년간 창고에 묵혀두었던 자전거를 근처 센터에 가져가 점검받고 깨끗하게 수리하고 기분 좋게 자전거를 타기 위해 나갔다.


그러나, 2년의 세월이 꽤 길었나 보다.

잠깐이나마 익혔던 자전거 타기 기술은 리셋이 되었고, 본인 또한 그 상황에 꽤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원망은 고스란히 나에게 왔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나랑 자전거 타러 안 나갔기 때문이야."

"우리 집엔 왜 남자가 없어? 대모님 삼촌(남편분)이 가르쳐주었을 땐 잘 탔단 말이야! 엄마는 잘 못해!"


중심 잡기 힘들어도 엄마 탓. 자전거가 넘어져도 엄마 탓. 모두 모두 엄마 탓이었다.


그동안에 바쁜 와중에서도, 이 시국에서도 사람 없는 곳 피해 다니며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었는데.. 그런 것은 싹 사라지고 자전거 타러 가자고 하지 않은 무심한 엄마만 남은 상태였다.

사실, 그동안 바쁘다고 몸이 힘들다고 창고에 잠자고 있던 자전거 얘기를 굳이 꺼내지 않은 것도 있었기에 미안한 마음에 속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꽤 힘든 상태로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두 번째 도전,

아쉬워하는 아이가 마음에 걸려, 다시 한번 해보자고 용기를 주고 밖으로 나왔다.

사실 속으로는 운동신경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나도 혼자 터득한 거라,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기 힘들기도 했다.

다만, 아이가 지레 겁먹어 손을 놔버리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론적인 것보다는 아이가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잡아주는 것보다는(힘들기도 했고) 옆에서 같이 뛰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런저런 방법 다 써본 상태라 안 되면 말지 뭐..  아쉬울 것도 없었다. 

마음도 몸도 상할 대로 상한 상태..


"우리 자전거를 이겨버리자! 으쌰 으쌰" 하며 옆에서 뛰자 아이는 즉석에서 지어낸 주문을 외치며 힘차게 발을 굴렀고 비틀비틀하던 자전거가 제법 바로 서기 시작했다. (아이의 주문: 내 똥꼬가 미쳤어~ 쏭)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뒤에서 보긴 아직 비틀거려 불안하긴 해도 이제 제법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3년 전 아이에 비해 컸던 자전거는 이제 안장과 핸들을 가장 높이 꺼내도 많이 작았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자전거가 애에 비해 너무 작다고 하실 정도)




제3차 두 발 자전거 대전

바로 오늘이다.

아직 완벽하진 못해도 처음으로 청계천까지 완주한 기념으로, 이번 연휴엔 아이에게 새 자전거를 사주기로 마음먹었었다.


계획대로 자전거를 사러 갔고, 아이가 맘에 들어하던 자전거는 좀 비쌌지만 그래도 가볍고 이왕 사는 거 좋은 거 사는 게 좋다며 기분 좋게 결제를 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자전거를 받고 시승하러 가는 길.. 

아이는 너무 좋은 나머지 또 수다쟁이가 되었다. 기분 좋은 아이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행복하다.


그러나, 가는 길에 새 자전거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던 건 어디로 간 걸까..

중심이 잘 안 잡히자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처음엔 다 그렇다며 곧 익숙해질 거라 얘기해주었으나..


"엄마는 40살이 넘었잖아. 그리고 자전거도 잘 타잖아. 그러니까 그렇지!"

"이건 안장도 딱딱하고 불편해"

"알루미늄이라 이상해!" (알루미늄이 더 비싸거든? ㅠ)

"나 잘탔는데 이 자전거가 이상한거야!"


자전거가 잘 안 타지는 게 다 자전거 탓, 엄마 탓이라며.. 또 남의 탓을 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참.. 마음이 먹먹해져 입을 닫게 된다.


그리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참을 앉아있게 되었는데..

용기를 내보라고 해도 뭐라 하고, 집에 가자고 해도 불만이다.

아이가 그렇게 원인을 밖에서 찾을 땐, 처음엔 정답이 될만한 것들을 얘기해주려 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겐 잔소리로만 들릴 뿐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론 아직까지 내가 찾은 해결안은 그저 입을 닫는 것뿐이다.

아이의 화가 가라앉길, 차분해지길 기다릴 뿐..


이제 화살이 자전거에서 무표정으로 입을 닫은 나를 향한다.

"엄마는 나 싫어하지? 또 지친 표정으로 그러고 있잖아" (아니야.. 네가 엄마랑 얘기하고 싶어 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네가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타봐도 좋고 집에 가자고 해도 좋아)

"저 자전거는 가볍고 휘청거리고 마음에 안 들어. 옛날 자전거가 훨씬 좋아." (저 자전거를 고른 건 너도 나도 실수였네. 엄마도 잘 볼 줄 몰라서 그냥 결정했는데.. 타던 자전거가 좋으면 그거 타. 이건 샀으니까 엄마가 타도 돼)


아이의 푸념, 짜증, 원망은 계속되었고, 나는 아이가 이런 위기 상황의 원인을 항상 외부로 돌리게 된 게 나때문일까..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고, 계속되는 답답한 말에 화를 내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참았다.


또 시작이네..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계속 참고 있자, 드디어 아이가 좀 순해진다.

"엄마 언제까지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네가 편해질 때까지..)

"이제 다 했어. 괜찮아.. 가자"


그리고 집에 가기 위해 일어섰다.

아이의 못내 아쉬운 눈빛이 맘에 걸리기도 하고, 이렇게 집에 갈 경우 다음에 또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하기에..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한다.


"한 번 타볼래? 자전거가 가벼우니 발로 꾹 누르고 핸들이 맘대로 움직이니까 처음에 손으로 꾹 누르고 타면 좀 나아. 엄마도 그렇게 타면 훨씬 안정돼"


그리고.. 아이는 자전거에 앉았고.. 비틀거리며 출발했다.

나는 쫓아가며.. "자꾸 움직이니까 꾹 눌러서 혼내줘!!"라고 외쳤고 점점 아이의 뒷모습은 안정적이 되어갔다.

그렇게 짧은 거리를 두세 번 왕복하며 아이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전까지 온갖 악담을 들었던 새 자전거는 '악마의 똥꼬'라는 새 이름도 갖게 되었다.

"엄마 나는 이 자전거가 정말 좋아." (뭐라고?) 


나도 따릉이를 대여해 두 번째 청계천 완주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만족감에 기분 좋은 아이는 내가 밤마다 읽어주는 해리포터를 듣다 꼬르륵 잠이 들었다.

새로운 자전거까지 마스터했으니 이제 당분간 자전거로 속 썩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힘든 여정이었다.

아이가 운동신경이 없는 건지, 내가 정말 가르쳐줄 역량이 부족한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원인을 밖에 두고 원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스스로 용기를 내어 개척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원망의 화살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으로서 넓은 마음으로 아이의 용기를 독려할 그릇이 되지 못함이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우리는 해냈다.

아이는 속상한 말을 쏟아내긴 했어도 혼자 차분해질 때까지 도달하였고, 다시 용기를 내었다.

 나도 아이를 공격할 만한 재료가 백가지 정도는 되었지만, 그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낸다는 걸 잘 알기에 그냥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가 용기를 내었을 때 정말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고 칭찬해주었다.



요즘 심리학 수업을 듣는데, 마침 오늘 들은 수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요약해서 적어서 원문과 의미가 좀 다를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기쁨'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내가 특별하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이 충족(Grace)되면 그의 결과로 기쁨(Joy)을 경험할 수 있고, 이 기쁨을 충분히 경험하게 되면 편안한 상태(Peace)를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편안한 심리 상태에서는 위기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위기 상황을 편안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정말 원하던 것인데! 눈이 번쩍 했다.

그러려면 아이가 정말 사랑받는다는 걸 더 표현해주면 되겠구나.. 하는 솔루션까지 알게 되었다.


많이 표현한다고 했는데, 아이에겐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아이를 진심으로 특별하게 어떤 조건 없이 사랑하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니, 그 사실을 좀 더 표현해보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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