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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Feb 08. 2023

밥 안 먹는 딸과 12년, 과연 요즘은?

나중에 키 작다고 원망 마라

딸~ 저녁 먹자.

네, 엄마! 오늘 반찬은 뭐예요? 와~ 맛있겠다.

많이 먹어. 딸~


아름답다. 그러나 꿈이다.


딸~ 저녁 먹자.

뭐 먹는데? 

할머니가 미역국 끓이셨어. 계란말이도 할까?

아니. 안 땡겨.

그럼 뭐가 땡기는데?

몰라.


그래, 이게 현실이지.




나의 시점


지금 13살인 딸이 꼬꼬마 아기였을 때, 배꼽에 작은 구멍이 있어 종합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 아이를 유모차에 앉히고 놀아주는데, 지쳐 보이는 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건다. 옆에는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아 있다.


"아이 곧 밥 먹을 텐데, 콩나물도 주고 김치도 주고 다 줘요. 책에서 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다 필요 없어. 까다롭게 키웠더니 애가 밥을 안 먹어요. 그래서 지금 병원 다니는 거예요. 정말 내 말 믿고 그냥 다 먹이면서 키워요."


평소 같으면 웬 오지랖? 했겠지만 진정성 있게 얘기해 주시는 모습과 자연스레 시선이 이동했던 그 집 아이의 마른 몸에 감사한 조언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진정한 조언을 실천하지 못했다.


핑계라면, 아이는 어떤 이유식과 아기밥을 해줘도 분유 외에는 웨~ 하고 뱉어버렸기 때문이다. 뭘 더 먹으려고 해야 콩나물도 먹이고 김치도 먹일 텐데 분유 외에는 인상을 쓰며 다 뱉어 버리니 밥 한 숟가락 입에 넣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소아과에 가면 늘 한 마디씩 듣고 오는 것도 일상이었다.


"(고기 모형을 들고) 소고기를 하루에 이 만큼은 먹어야 해요. 아이가 너무 말랐어요. 빵도 먹이고 과자도 먹이고 고기도 꼭 먹이세요." 


그 와중에 지우개만 한 고기 모형을 보며, 하루에 저만큼을? 평생 먹은 것 다 합쳐도 저거 반도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었다.


수 없이 '밥 안 먹는 아이 밥 먹이기'를 검색하며 온갖 방법을 다 써봤더랬다.


회유 모드

- 신기한 수저와 포크로 정신을 쏙 뺀 뒤 먹이기 → 그것들은 그냥 장난감이 되었다.

- 노래하고 멜로디북으로 즐겁게 해 준 뒤 먹이기 → 매 끼니 쇼를 하기엔 내가 너무 지쳤다.

- 칭찬하기 → 뭘 먹어야 칭찬을 하지.


속임수 모드

- 고기를 달달 볶아 곱게 간 뒤 밥 안에 숨겨서 먹이기 → 몰랐어? 아이는 훨씬 예민하게 맛을 느낀다는 걸. 


엄격 모드

- 떼를 쓰거나 음식 가지고 장난만 치면 그만 먹으라고 의자에서 내려놓기 → 이상하다? 배고프면 다시 와서 앉혀달라고 매달려야 하는데? 그러면 한 번 안아주고 식사 예절을 가르쳐주면서 밥을 먹이려 했는데.. 어디 갔지?



무엇보다, 워킹맘이라 평일은 외할머니가 주말은 내가 식사를 담당하니 육아 스타일이 일관적이지 않았다. 한 입이라도 더 먹이겠다는 의지의 외할머니는 뽀로로를 틀어놓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이셨고, 나는 그래도 돌아다니며 먹일 순 없다며 어떻게든 식탁에서 먹이려 했었다. 두 스타일 모두 아이 밥 먹이기엔 별 효과가 없었다.


편식과 밥 거부는 13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먹고 싶은 건 어느 정도 잘 먹는다는 거다. 우선 영양 문제는 해결이다. 그러나 편식이 문제다.


펜데믹으로 한 끼 급식의 은혜도 받지 못하던 시기, 하루 두 번 끼니때마다 집엔 큰 소리가 났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 결국 화를 내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스트레스에 지쳐 시켜주던 게 습관이 되어 배달앱은 딸의 전용 셰프가 되어 버렸다.


내 잘못이다.





딸의 시점 


(딸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씁니다.)


나는 정말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안 먹는다고 하는 거다. 게다가 할머니는 늘 나는 못 먹는 반찬을 꺼내 놓고 밥을 먹으라 하신다. 그리고 맨날 계란찜만 해준다 하신다. 내가 닭이야? (이 와중에 닭이 계란찜을 왜 먹냐? 껴드는 나) 그리고 나는 식감이 이상하거나 냄새가 약간이라도 나면 음식이 넘어가지를 않는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어떡해. 음식이 안 넘어가는데..


그리고 나도 배달 음식이 싫다. 그런데 집에 먹을 게 없다. 엄마가 배달시켰으면서 다 내 핑계만 댄다. 




밥투정과 편식과 함께 한 12년이다.

유치원 가면 괜찮겠지, 초등학교 가면 나아지겠지.. 희망이라도 있었고 속만 상하기엔 아이는 너무 귀여웠다. 그래서 그 시기를 크게 우울하지 않게 여러 음식들을 시도해 보며 버텼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딱! 십 대! 하면 떠오르는 건조하고 귀찮은 눈빛으로 온몸에 어설픈 사춘기 아우라를 뿜뿜하고 있는 아이가 하는 밥투정은 사실 화만 돋을 뿐이다.


특히, 겨울 방학에 들어서자(아니 방학을 왜 두 달이나 하는 겁니까?) 의지하던 급식신도 없고, 재택근무 중이라 하루 두 번 식사 때마다 부딪힌다. 에라 모르겠다 시켜줬다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며 어떻게든 집밥을 먹여보려 하다가 뽜이트. 





휴전


점심에 아이가 삼계탕을 시켜달래서 시켜주고 나는 잠시 회사에 다녀왔다. 퇴근하고 오니 삼계탕이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더러워서 안 먹었대" 라며 살짝 이르신다. 듣던 아이는 억울해하며 "닭껍질이 너무 징그럽게 붙어 있는데 어떻게 먹어? 더럽다고는 안 했어".


둘 다 그만해. 이미 안 먹은 거. 

나도 힘드니 나중에 얘기하자.


똑. 똑.


꼬깃한 5만 원을 들고 방으로 찾아온 아이..

"엄마 미안해. 진짜 먹으려고 했는데 껍질이 너무 비위가 상했어. 이거 삼계탕 값이야"

"알아. 너 비위 약한 거. 그런데 할머니가 만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차려주셨는데 짜증 내며 안 먹는다고 하면 누구든지 화가 날 거야. 그리고 엄마도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너 먹고 싶다는 거 사주는 건데 그대로 버리게 돼서 엄마도 너무 아깝고 속상해.


우리 조금만 서로 노력할까? 너도 집밥을 거부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시도해 보는 거야. 안 먹어도 좋아. 맛이라도 봐보자. 그러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맛을 찾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엄마가 이제 편한 맘으로 네가 잘 먹을 때까지 기다릴 테니, 뭐가 먹고 싶은지만 얘기해 줘.

계속 모른다고 하고 차려준 걸 거부만 하면 자꾸 싸움이 나잖아. 

네가 먹고 싶은 걸 얘기하면 엄마가 기쁜 마음으로 해줄게(아니 사줄게). 언젠간 잘 먹을 테니까 기다릴게. 


우리 둘 다 노력하자."


어제 일이다. 그 뒤로 매 끼니 배달 주문이긴 하지만, 먹고 싶은 걸 얘기는 하고 있다.

입 꾹 닫고 사람 속을 태우는 게 아니니 시켜주고 있다. 아이에게 말한 것처럼 사실 기쁜 마음은 아니다. (비밀)




+ 배달에 의지하는 이유

일을 하기 때문에,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아이 음식을 조리할 나만의 주방이 없어서.. 핑계도 다양하다.

그러나 부끄러운 가장 큰 원인은 나는 요리를 안 좋아한다. 게다가 나도 잘 안 먹는다.

저녁은 거르기 일쑤고 살 뺀다며 대충 먹는다. 


사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아이 저녁 메뉴가 곧 배달 예정이라 급하게 반전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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