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치 Jul 23. 2023

위태로운 너와 나

등교 거부 68일~70일, 우리 모두 아픔

어느샌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하나씩 하나씩 후드득 깨진 조각들이 떨어진다. 내 안엔 물이 가득 담겨 있고, 그 물은 우리 가족이 마실 물이다. 물이 샐까 멈춰 조각들을 다시 몸에 끼어 맞춘다. 그러나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물을 잠시 비워내고 제대로 붙여야 할 때다.




2023.07.17 (68일째)

아이의 방문은 열렸지만, 대인기피증으로 인한 외출 거부는 여전하다. 주말에도 엘리멘탈을 보러 가기로 했지만, 마지막 관문인 거울 앞에서 실패했다. 여행은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든다.


띵동! 오늘의 알림장이 도착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일 수박화채를 만드는구나. 아이가 좋아할 텐데...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두 달간 여러 이상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한 번도 내 몸을 살펴보지 않았다. 입병은 낫지 않고 얼굴과 가슴팍에 열꽃 같은 트러블이 올라오며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 휴대폰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게 화병인 건가. 아이가 외출만 해준다면 병원도 가고 여행도 가고 모든 것이 다 지나갈 테지만, 지금 이 순간은 너무 힘이 든다. 캠핑장비를 보관하는 지하 방이 유일하게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라도 울어 내야 다음 날을 살 수 있다.


2023.07.18-19 (69-70일째)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잘 먹고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 보이기에 물어보니 역시 '내 얼굴이 너무 싫다'이다. 감정 변화가 너무 심해 놀랐다. 꼭 다른 아이처럼 기분이 확 달라진다. 아까는 누구고, 지금 넌 누구니?


다음 날 새벽 6시,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가니 아이가 씻고 나온다. 이 시간에 보는 아이가 낯설다. 설마 밤새고 지금 씻은 거니? 물으니 자다가 땀냄새가 나서 샤워를 했다고 한다. 잘 씻는 아이가 한 동안 씻지 않길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런데, 내 칫솔이 방금 사용한 듯이 꺼내져 있다.


"엄마 칫솔 썼어? 네 칫솔 새것 꺼내놨는데"

"아 몰라! 없어서 썼어! 내가 더 찝찝하거든! 왜 새 칫솔 안 꽂아놨어! 내가 새 칫솔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아!! @#$@#$@@!!"


이틀 전, 아이 칫솔이 바닥에 있길래 버리고 새 칫솔을 꺼내놨었다. 포장을 까두면 새것인 줄 모를까 봐 우선 그대로 두었었는데 못 봤나 보다. 그리고 원래 아이는 아까울 정도로 알아서 칫솔을 자주 갈기에 새 칫솔 두는 곳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안 닦으면 안 닦았지, 내 칫솔을 쓸 리가 없다. 졸려서 그런 걸까? 인지가 떨어지는 걸까? 걱정은 불안이 되어 머릿속을 마구 헤집는다.


그러던 중, 체험학습(가정 학습)이 종료되고 다시 무단결석 3일째가 되었기에 선생님께서 방문해야 한다고 하신다. 아이에게 얘기하니 격하게 거부한다. 상담선생님과 통화 중에 오늘 담임 선생님 방문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했지만, 전달이 되지 않은 건지 선생님께선 오셨다. 결국, 선생님 요청으로 외할머니는 강제로 문을 열었고, 아이는 어두운 방에서 소리만 지르며 만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아이 방문은 다시 닫혔다.


퇴근 후 많이 놀랬지? 하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은 안정이 우선인 것 같다. 늦은 시간까지 아이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시큰둥했지만 나가라고 하지 않으니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며 같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불안했기에, 아이 얼굴을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멀쩡한데, 까탈스러운 건 기질이고 지금 사춘기잖아. 아이는 그냥 정상인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하다.


새벽에 아이가 방문을 연다. 거울이 깨졌다고 한다. 잠결에 깨진 유리를 치우고 청소기까지 한 번 돌리며 다친 데는 없는지, 거울은 네가 던진 건지 물어보니 끄덕끄덕한다. 일단 자라고 한 뒤 밤새 뒤척거리며 밤을 보냈다. 간신히 출근을 위해 6시쯤 방문을 여니 아이가 아직도 깨어 있다. 이유는 양치하려면 거울을 봐야 하는데 거울을 못 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못 자고 있다고... 하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네가 걸린 마음의 감기가 꽤 독한 놈인가 봐, 독감은 꼭 약을 먹어야 해. 그러니 우리 오늘 병원에 가자"

그리고 퇴근 후 응급실에 가기로 약속했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이런 일로 응급실에 가는 건 처음이라 잠못 자 피곤한 상태지만, 결연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으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기 싫다며 또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힘이 쭉 빠진다.




우선 여행은 취소했다. 공항 가는 날 나가기 싫다고 버텨 여행비를 몽땅 날리는 것도 아깝지만, 지금은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치료가 우선인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아이가 정말 아픈 건지, 아니면 고집을 피우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전문가의 진료와 검사를 받아야 가닥이 잡힐 것 같은데 꼼짝 않고 있으니 속만 탈뿐이다.


우선 아이가 집안에서만이라도 밝게 지냈으면 좋겠다. 거기까지 가는 게 1차 목표였는데, 강제로 열린 방문에 아이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다시 꺼내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래 걸려도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는데 자꾸 뒤로 가는 느낌이라 힘이 빠진다. 그래도 내가 힘을 내야 한다. 그래서 기록한다. 두서없기도 하지만, 기록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든 아이, 깨워 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