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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l 23. 2023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다

등교 거부 71일~72일, 위로가 필요한 순간

아이의 등교 거부가 시작되고, 답답한 마음에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최근 읽은 '껍데기를 잃은 달팽이'에서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았다. 방황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 아프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던 저자는 이해와 사랑으로 아이를 끝까지 지켜내셨다. 그 길이 일반적인 길이 아니면 어떤가, 아이가 건강하게 안전한 가정에 있는데 말이다. 사실 나도 평범한 길을 걸어오진 않았지만, 잘 살고 있는 편이다. 언젠간 내 얘기도 남겨보고 싶다.


책에서 인용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대사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공식한 줄 달랑 외워서 풀어버리면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거야. 살을 부대끼면서 친해져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사랑할 수 있는 거야.


그래, 이런 일들이 있기에 부대끼며 아이 마음속 깊이 있는 아픔과 친해졌다. 이제 이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단계이다. 아이의 아픔과 마음을 이해하면, 어느 길에 서 있어도 빛나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 있겠지.




2023.07.20 (71일째)

아이의 방문이 다시 닫힌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잠을 자지 않고 멍하니 있다가 잠깐 쪽잠을 자고, 또 일어나 있고 하루종일 피곤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간신히 먹는다 하는 메뉴를 주문해 놓으면, 음식이 도착하면 자고 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은 채 자다 깨다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젠, 학교고 뭐고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게 된다. 이러다 쓰러질까 봐 걱정이 되고, 차라리 쓰러지면 그 핑계로 응급차를 불러 응급실 진료를 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복잡하다.


2023.07.21 (72일째)

전 날 하루종일 굶은 아이 걱정에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오전에 깨있길래 초밥을 먹는다 하여 다행이다 하고 초밥을 주문했지만, 도착하니 잠들어 일어나질 못한다.


오후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들과 약속이 있어 약속 장소로 나갔다. 못 보던 선생님도 한 분 더 오셨는데, 전에 집에 방문하셨었다고 한다. 외부 상담센터, 병원등과 연결을 주로 하시는 것 같다.


우선,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아이를 나오게 하려면 강제 입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미성년자이기에 본인 의사 상관없이 데리고 나올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아이들은 거부가 심해 팔다리를 들고 나오게 되고, 그렇게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퇴원을 해도 경과가 좋지 않다고 한다. 나 같아도 싫을 것 같다. 바비큐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나가는 것도 치욕스러운데, 낯선 곳에 보내버린 부모가 정말 원망스러울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내가 강제 입원을 원하는지 확인하셨다.

"아니요, 제가 상담선생님께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문의한 건 맞지만 그건 젠틀한 방법이었고 이런 식은 아니었어요. 이러면 저에 대한 신뢰가 깨질 텐데 그건 절대 원하지 않아요"


다행이다. 강제 입원을 권하지 않아서...

오히려 외래 진료를 받은 환자에 한해 혹시 입원이 필요할 시 빠르게 가능한 병원을 소개해주시고 도움 주는 정보들을 많이 주셨다.


아이 얘기가 어느 정도 끝나자,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아무리 우리가 옆에서 도와줘도 '결국 아이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건 엄마라는 것'과 그러기 위해선 '엄마가 중심을 잘 잡으셔야 한다. 그러나 엄마들 정신 건강도 온전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에게 말도 못 하고 자책만 하고 있을 거다. 그러면 엄마도 지쳐서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우리는 어머님을 도와드리고 싶다.'라고 하셨다.


"어머님, 많이 힘드시죠? 어머님 잘못 아니에요"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그리고 상담을 연결해 주실 예정이고, 내가 급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의료진의 연락처도 주셨다.


위로와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시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모든 책임과 연결의 중심은 나에게 있었기에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 마음 알아주시며, 챙겨주심에 위로가 많이 되었다. 그리고 두 달 여간의 긴장이 한 번에 풀린 듯, 심한 몸살 기운이 몰려와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퉁퉁 부어 버린 얼굴과 욱신거리는 몸상태, 그동안 몸살 없이 버틴 게 용하다. 그래도 그날 처음으로 와인 없이도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동안 한 번에 몰아 기록하느라 호흡이 빨랐다. 앞으로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기에, 이제 느린 호흡으로 내 감정과 아이의 변화 등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제,

현재 상황에만 너무 매몰되어 진짜를 잃지 않도록,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우선 아이가 스스로 문 밖을 나설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다. 일단 집안이 편해지고 아이 기분이 올라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방학 동안 아이가 안정을 찾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한다. 사춘기 카페에 가입하여 여러 사례들을 보며 그래도 내가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집 안에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구나 싶다.


내 건강을 챙기려 한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힘들면 마사지도 받고, 한동안 중단했던 운동도 다시 할 예정이다. 가을이 되면 산에도 올라갈 거다. 불행은 불안이라는 먹이를 좋아한다고 한다. 불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불안을 비워낼 것이다. 학교 안 가면 큰일 나나? 애가 아픈 게 큰일이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딸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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