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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Nov 18. 2016

#16_뭔가 다른 월요일

뭔가 다르다, 어떠한 의미에서든


사진출처_드라마 미생(2014)


士내女내 #16_뭔가 다른 월요일


오늘은 월요일 

뭔가 다른 월요일이다.


보통 월요일은 지치고 길다.

한 주가 시작하면 없던 힘도 으쌰 으쌰

발끝부터 끌어모아야 겨우 버틴다.

그렇게 피치를 올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임박하는 목금, 

일 에너지와 놀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한다.

축적된 스트레스와 놀 에너지.

이 둘이 섞여 불금토에 한 주의 절정을 찍고

일요일은 방전되는 경우가 잦다. 


평소대로라면 오늘 월요일도

몸만 출근했을 터.

하지만 이 미친 사랑이란 감정에

마음까지 다잡고 왔다.

가면 그녀가 있다 힘내자.


"띠딩 띠딩 띠딩"


내 메일함이 들어차는 소리.

하나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새로운 메일이 들어온다.

뇌구조 속 큼지막히 차지하던 그녀.

폭포수 같은 메일 더미에 잠시 묻힌다.

휴일을 끼고 출근할 때마다

이따금씩 해보는 상상.

수 백통이 넘어가는 메일들 중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선별하고

중요한 내용만 파악해 알려주는

개인비서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이렇게 똑똑한 컴퓨터가 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후우 다 보냈다아'


잠깐이나마 찾아오는 평화의 안식.

고객사 님께 보내야 할 메일을 송부드리고

메일이 문제없이 잘 갔는지

보낸 내용에는 오류가 없는지 등

모든 확인이 끝나면 그제야 빼꼼 들러주시는 안식.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이런 벌써 11시 반이 다 되었네ㅠㅠ'


아름다운 상상은 매번 현실을 배신한다.

집 밖을 나서기 전 챙겼던 다크초콜릿.

아침에 여유가 있다면 까치발로 사뿐사뿐

짧은 쪽지와 함께 그녀 책상 위 놓아두려 했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물꼬를 틀

감사표시와 훈훈한 대화들.

그녀를 십 분 먼저 보낸 뒤

출근길 내내 푹 빠져있었던 즐거운 상상이었다.

이래서 다들 못다 이룬 로맨스를

영화나 드라마로 퍼즐을 맞추는 게 아닌가 싶다.


"유미 씨 안녕하세요 ^^

아침부터 정신없었다가

이제서야 틈이 생기네요."


용기 내어 그녀에게 보낸 첫 사내 메시지.

보내자마자 미어캣이 된 나

목을 쑤욱 뺐다.

그녀와 내 직속 상사 자리를 두리번두리번.

잘 보이지도 않는 동태를 살핀 후,

다시 모니터 앞으로 쑤욱 고개를 숙인다.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없으시면 같이 먹으러 나갈래요?"


입사한 지 얼마 됐다고

배짱 있게 따로 점심을 먹나.

주말에 따로 밥도 먹었으니 

기세를 몰아 관계를 발전시키자.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떡하나,

콩깍지가 씌면 감정이 앞선다.


"우리 오늘은 말고 다음에 같이 먹어요ㅠㅠ"


앗, 내가 너무 앞선 것은 아닌가.

순간 차오르는 후회.

귤 같이 먹을래요? 에 이은 두 번째 거절이다.

누구나 할만한 거절도

계속 좋다고만 해주던 사람의 거절은 남다르다.


"네 그럼 다음에 같이 먹어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설마 내가 다른 누구와 약속을 잡으려 하진 않았지요 라는

결백한 표정을 하며 묻는다, 같은 팀 과장님께.


"과장님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없으시면 같이 먹으러 가실래요?"


"어 그래 오늘 나 유 부장님이랑 같이 먹기로 했어

이 대리도 같이 먹으러 나가자."


직장에서의 단체회식이란

그저 허기만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다.

총성 없는 전쟁터서 계속되는 전투.

보다 원만하고 전략적인 미래를 위해

돈독한 인적자원을 쌓는 시간이기도 하다.

뭐 내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 


"네 좋습니다. 나갈 준비 하겠습니다."


부장님께 안녕하세요

첫인사를 드린 뒤 건물 밖을 나섰다.


"참, 내가 깜빡 잊고 얘기 못한 게 있는데

오늘 옆 팀 송 부장님이랑도 같이 먹게 될 거야.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니 곧 나오시겠네.

아마 그 팀 사람들도 한 두 명 더 올 텐데

오면 인사하고 같이 움직이자고."


옆 팀이라...

설마 유미 씨도 같이 오진 않겠지?


"유 부장님 안녕하세요."


덥석 

설마가 사람 잡네.

꾸벅 인사하고 고개를 든 유미 씨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에 있던 다른 회사에서는

사내연애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들 모두

치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

설마 퍼뜨리겠어하며 믿었던 선배에게 털어놓은 건

되돌리고픈 큰 실수였지만 말이다.

하나 지금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다.

대개 여럿이 모인 직장 회식의 대화는

가장 높은 직급의 사람이 이끄는 법.

그분이 원하시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곧 펼쳐질 한 시간 가량의 점심시간

모쪼록 무탈하길 바래본다...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전 에피소드 목록은 士내女내 매거진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봐도 재밌을 듯싶습니다.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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