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몰아치는 아침, 오늘도 온다
士내女내 #15_미생의 아침
모니터에 몰아치는 파도.
업무 특성상
매일 오전은 촌각을 다툰다.
갑으로 모시는 고객사님.
님 입맛에 딱 맞는 기삿거리들을 선별하고
약속시간까지 양식에 맞춰 포장배달하기.
좋거나 나쁘거나,
유명세에 뒤따르는 기사량 덕분에
오늘도 일분일초 숨이 막힌다.
'휴우 오늘도 다 끝냈다.'
매번 나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
떠내려가면 어쩌나 엄습하는 불안감.
어푸어푸
휘몰아치는 파도에 허우적대도
정신줄 하나만 놓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
'규민 씨는 들어와 있나?'
한바탕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다.
잠깐 허락되는 달콤한 여유에
궁금한 동지의 생사여부를 살핀다.
상태는 온라인, 살아있다.
반가움에 첫인사말을 건네려는 찰나
소심한 고민이 앞을 막아선다.
'아무리 오전이 바빠도 그렇지,
출근한 지 지금 두 시간이 넘어가는데 말이 없네.
지금 말 걸면 덜 바빠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혼자 들이대는 것처럼 보일 거야...'
'아니야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나보다 더 정신없겠지.
마음은 있는데 여건이 안 되는 걸 거야.
미리 보내 놓으면 짬 날 때 보고 답장하겠지?'
누구에겐 같잖은 생각
내게는 편찮은 고민.
시간을 흘려보내다 꼬르륵
바닥난 체력이 점심 30분 전을 예고한다.
"유미 씨 안녕하세요 ^^
아침부터 정신없었다가
이제서야 틈이 생기네요."
드디어 도착한 그의 메시지와
덩달아 묻는 같이 점심 한 끼.
안전한 점심플랜을 짜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오순도순 같이 먹고픈데
상황이 너무 빠듯하다.
제한된 점심시간,
다른 이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몰래 나가 먹고 돌아오기에는.
"우리 오늘은 말고 다음에 같이 먹어요ㅠㅠ"
쳇바퀴 같은 오전에
색다른 점심이었으면 했는데 아쉽다.
"유미 대리님, 나갈 준비 되셨어요?
오늘 송 부장님이 쏘신대요~ > _<"
"오 그래? 오늘 우리 팀 전체 회식인가?"
"아니요, 저랑 대리님 그리고 부장님.
이렇게 셋이서만 먹는대요.
예정에 없던 점심인가 봐요"
불행 중 다행이다.
동석인원이 많아지면 그만큼
두뇌도 풀가동해야 하는 법.
점심시간만큼은 뇌를 재우고 싶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거늘
꿀맛 같은 점심이 자칫 꼬일 뻔했다.
"부장님 저희 뭐 먹고 싶으세요~?"
안에서도 모시는 갑.
이따금씩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을씨년스러운 을의 마음이 위로받는다.
비록 결제는 법인카드일지라도.
"글쎄 유미 대리랑 수민 씨는 뭐 먹고 싶어?
여기 근처 파스타 집 예약해놓았는데 거기 괜찮아?"
뭐 먹고 싶냐는 질문은 일종의 루틴이다.
타자가 공을 치기 위해 타석에 들어서면 하는
일종의 버릇 같은 것?
"네 부장님 파스타 좋아요~!"
"그래 좋다 하니 다행이네.
아 참, 옆 팀 유 부장님 알지?
예전에 했던 약속이 마침 겹쳐서 말이야
오늘 같이 합석해서 먹을 건데 괜찮지?
그 팀에서도 두 명정도 더 온대"
상사의 괜찮냐는 질문.
주로 긍정의 답을 확인하기 위한 경우다.
안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큼
어색함을 초래하는 것도 없을 터이니...
부장님과 수민 씨.
다 함께 무리 지어 걸어가는데
저 멀리 우릴 기다리는 것만 같은
셋이 눈에 띄었다.
"유 부장님 안녕하세요."
꾸벅,
45도 인사 후 고개를 들었다.
뭐지, 순간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부비적부비적
아니나 다를까,
그 남자 규민 씨도 함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사내 썸남과의 첫 점심을 앞두게 됐다.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이전 에피소드 목록이며,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봐도 재밌을 듯싶습니다.
2편 - #2_'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
3편 - #3_오작동! 내 이성적 사고회로
4편 - #4_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5편 - #5_설레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6편 - #6_넌, 이런 내 맘 알까?
7편 - #7_너라는 우주에 첫걸음
8편 - #8_시나브로 길들여지기
9편 -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10편 - #10_보통여자? 내게는 다른 걸
11편 - #11_이 밤의 끝자락
12편 - #12_갈피와 타이밍
13편 - #13_참 묘한 '첫 통화'
14편 - #14_선을 넘으면 보이는 것
15편 - #15_미생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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