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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Nov 01. 2016

#14_선을 넘으면 보이는 것

가만히 서 있으면 알 수 없었을


사진출처_드라마 'W'(2016)


士내女내 #14_선을 넘으면 보이는 것


불안하다.

그 어떤 인간관계든,

관심받고 싶은 상대에게 먼저 호감을 표시하고

반응을 기다리는 것.

거절당할 여지는 항상 불안감을 몰고 온다.

더불어 내가 상대보다

마음 씀씀이가 큰 약자라 느껴진다면,

기다림 속 불안감의 밀도는 보다 진하다.


'1이 없어진 지 언제인데

왜 아직 답장이 없을까...?'


전파를 타고 날아다니는 문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말풍선과는 달리

되돌릴 수 없는 선명히 기록된 문자들.

그래서 보다 조심스럽고

글자 하나하나에 뜸이 들여진다.


"고마워요, 덕분에 잘 들어왔네요.

저도 오늘 규민 씨랑 즐거운 시간 보내서 좋았어요."


엇 다행이다ㅠㅠ

그리 짧지 않은 답장에 고맙다고까지 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감사표현.

하지만 그녀의 오늘하루가 '나로 인해' 고마웠고

내 마음처럼 즐거웠다는 말은,

적극적이기로 한 내 결정에 불을 지폈다.


"지금 모하고 있어요?

자기 전에 잠깐 통화할래요?"


방금 끝마친 우리들의 데이트가 괜찮았는지

데이트 때 나눴던 수많은 미소들은 진짜였는지

나에 대한 그녀 진심이 미치도록 궁금한 지금.

발칙하지만,

자꾸만 야금야금 선을 넘어 확인해보고 싶다.

통화에 응한다면,

그녀 목소리를 통해 엿볼 수 있을 테니까.


"저 방금 막 다 씻고 잘 준비 거의 다 했어요.

한 십 분 뒤쯤 통화할까요?"


좋아 십 분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부쩍 쌀쌀해진 이 가을밤.

혼자 산다는 그녀 집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도록

목소리를 가다듬을 시간.

잘 준비고 뭐고, 현재 내게 최고 우선순위는

십 분 뒤 그녀와의 통화다.


"여보세요~"


숨을 여유 있게 들이마신 뒤

복식호흡으로 낮추는 .

주변이 시끄러운 야외라면

들리지 않았을 가볍지 않은 소리.

조용한 이 밤 속,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우리이기에

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목소리.


"여보세요~

저 이 시간에 회사사람이랑 통화는 처음 해봐요"


밤하늘 보름달처럼 환한 그녀 목소리.

순수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에게는

이 시간에 회사사람이랑 하는 통화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요? 유미 씨 이불은 잘 덮었어요?

요즘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밤공기가 차니

감기 안 걸리게 따뜻하게 하고 자요."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녀 목소리.

좋아하는 라디오처럼

밤을 새우며 듣고 싶을 만큼 끊기가 어렵다.

실수하지 않으려 그녀에게 잘 보이려

하루종일 긴장한 탓일까?

몸도 마음도 조금은 지친 탓에

긴 말 없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했다.


"시간도 늦고 해서 다른 긴 말보다는

잘 자라는 말 해주고 싶었어요."


목소리만큼 그녀의 오늘 밤도 따뜻하기를.


"고마워요. 규민 씨도 따뜻하게 하고 자요."


시간은 거의 새벽 두 시.

정말 꿀잠을 잘 것만 같다.

내일이 주말인 일요일이라서가 아니다.

잠들기 직전,

기분이 너무 벅차고 좋아서 그렇다.


예전에 겪었던 내 사내연애 실패담.

왠지 가까운 미래의 성공담을 위해

존재했던 걸까?

설마, 다시 흔들릴까 의심했던 내 마음에

돌을 던진 이 여자.

다들 그토록 위험하다고 반대한다던

사내연애라는 시험에 또 들게 한다.


어김없이 찾아온 월요일 아침에

굿모닝 까똑을 보냈다.

혹시나 출근길에 마주치면 어쩌지?

마주치면 나란히 걸을 테고

다정히 걷는 모습을 회사의 다른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창문을 보며 고민에 빠져있던 나.

무언가 다급히 출근을 서두르는 그녀 모습에

십 분 스톱워치를 맞춘다.

출근길 마주침은 교묘히 피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회사 그리고 출근.

직장동료와의 첫 데이트 후의 첫 출근은

이제 또 시작되어버렸다.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이전 에피소드 목록이며,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봐도 재밌을 듯싶습니다.


1편 - #1_'하다'는 것

2편 - #2_'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

3편 - #3_오작동! 내 이성적 사고회로

4편 - #4_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5편 - #5_설레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6편 - #6_넌, 이런 내 맘 알까?

7편 - #7_너라는 우주에 첫걸음

8편 - #8_시나브로 길들여지기

9편 -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10편 - #10_보통여자? 내게는 다른 걸

11편 - #11_이 밤의 끝자락

12편 - #12_갈피와 타이밍

13편 - #13_참 묘한 '첫 통화'

14편 - #14_선을 넘으면 보이는 것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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