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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Oct 29. 2016

#13_참 묘한 '첫 통화'

별 것 아닌 게 별 것으로 만드는

사진출처_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2016)


士내女내 #13_참 묘한 '첫 통화'


"고마워요, 덕분에 잘 들어왔네요.

저도 오늘 규민 씨랑 즐거운 시간 보내서 좋았어요." 


생각보다 담백한 답장.

처음에는 꽁냥꽁냥 호감표시를 하고 싶었다만

타자를 치고 스윽 한번 훑어보니

아직은 시기상조라 여겨졌다. 

여러 번 대화를 나누고

오늘 첫 데이트도 무사히 끝마쳤지만,

'직장동료'

사전에는 이것 이외에 없었다,

우리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할 단어는. 


"지금 모하고 있어요?

자기 전에 잠깐 통화할래요?"


통화? 통화라니...

불과 한 시간 전까지

마주 보며 얘기를 나누었던 남자.

헤어진 지 얼마 되었다고 또 대화를 한다니

다시 할 말이나 있을까?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제멋대로 쿵쾅거리는 심장.

적막한 빈 방을 괜히 두리번두리번.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고

죄 없는 침대 위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한다.


"저 방금 막 다 씻고 잘 준비 거의 다 했어요.

한 십 분 뒤쯤 통화할까요?"


사실 잘 준비는 다 끝나 있다.

허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상 가능한 질문과 답에 대한 준비는.

새벽 한 시 반.

이 야심한 시간에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파서 이럴까?

사랑이라는 감정에 서툰 나.

아직은 중간중간 숨 고르기가 필요한가 보다.

특히, 이렇게 당황스러울 만큼 적극적이지만

전혀 싫지는 않을 때.


"여보세요~"


자상하고 따뜻함.

분명 낯이 익은 목소리였지만

나 홀로 지키는 공간에서 듣는 그 남자의 소리는

무언가 다르고 좋았다.

그이의 소리로 채워지는 이 공허한 밤은

어느새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 됐다. 

 

"여보세요~

저 이 시간에 회사사람이랑 통화는 처음 해봐요"


어색한 기류를 휘젓고 싶어서였을까?

실은 신기한 마음에 뱉어버린 말이다.

네모난 기계 너머로

이렇게나 포근한 직장동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요? 유미 씨 이불은 잘 덮었어요? 

요즘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밤공기가 차니

감기 안 걸리게 따뜻하게 하고 자요."


어라?

직장동료와의 이 시간 통화가 처음인지는 동조를 안 하네.

본인은 경험이 있는 건가?

뭐 지금 고민하기엔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아니 의구심이 들어도 의심하기 싫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 오는 이 남자를.


"시간도 늦고 해서 다른 긴 말보다는

잘 자라는 말 하고 싶었어요."


이 시간에 통화하고 싶다는 남자와

어떤 의미심장한 말을 건넬 수도 있단 생각에 긴장했던 나.

괜한 기대와는 달리,

나를 더 아쉽게 애타게 만들어준 것 같아 고맙다.


"고마워요. 규민 씨도 따뜻하게 하고 자요."


자꾸 고맙다는 말을 하게끔 만드는 이 남자.

그래서일까?

이 남자는 나에게 점점 고마운 사람이 되고 있었고 

베풀고 싶은 사람이 되어갔다.


"까똑, 까똑."


이 소리만 나면 영혼 없이 폰 스크린을 밝히고

손가락을 비벼대었던 나.

답장을 뭐라고 보냈을까?

베풀고 싶은 남자는 무심코 반응했던 소리마저

특별하게 만들었다.


부담 없는 적당한 간격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일요일을 보냈던 우리.

그이의 굿모닝 까똑은 받았지만

출근길 마주침은 교묘히 피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회사 그리고 출근.

직장동료와의 첫 데이트 후의 첫 출근은

이제 막 시작되어버렸다.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이전 에피소드 목록이며,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봐도 재밌을 듯싶습니다.


1편 - #1_'하다'는 것

2편 - #2_'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

3편 - #3_오작동! 내 이성적 사고회로

4편 - #4_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5편 - #5_설레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6편 - #6_넌, 이런 내 맘 알까?

7편 - #7_너라는 우주에 첫걸음

8편 - #8_시나브로 길들여지기

9편 -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10편 - #10_보통여자? 내게는 다른 걸

11편 - #11_이 밤의 끝자락

12편 - #12_갈피와 타이밍

13편 - #13_참 묘한 '첫 통화'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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