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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Oct 16. 2016

#11_이 밤의 끝자락

너란 남자, 덕분에 이 밤이 다르다

사진출처_KBS 드라마 '아이가 다섯'(2016)


士내女내 #11_이 밤의 끝자락


서로의 집처럼 가까워진 우리 사이.

오늘따라 하루 끝자락이 아쉽다.

이리저리 화제를 돌려 발걸음을 질질 끌었지만

두 발은 어느새 내 집 앞이다.

몸만 집에 온 기분인데 어서 와 손짓하네,

열기 싫다, 무거워 뵈는 저 현관문. 


"들어가는 것 보고 들어갈게요."


처음이다.

이런 말을 남자에게 들은 것도

직장동료이자 이웃에게 들은 것도.


"규민 씨 괜찮아요, 바로 옆 집인걸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들어가세요."


마음에 없는 말.

괜스레 던지며 한번 더 네 맘을 떠본다.

형식 아닌 진심인지 궁금하니까.


"걱정마요 바로 옆집이라 괜찮아요.

그럼, 공동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것까지만 볼게요.

그래야 끝까지 잘 데려다준 것 같잖아요.

건물 안까지는 저 믿고 편하게 들어가요."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가.

낯선남자였다면 주먹에 힘이 들어갔을 말,

내 맘 속 너이기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억지로 돌리는 내 발길 살살 달래느라.


또각또각.

한 걸음씩 내딛다 도착한 공동현관문 앞.

문득 궁금해진다,

머릿속이 한 남자 생각만으로 가득 차

집 앞에 다다른 적이 있었는 지를.


그가 있다.

인사를 나누었던 아까 그 자리.

자리를 지키던 남자는 

훈훈한 미소로 손을 가볍게 흔들어 화답했고

나 역시 방긋 웃으며 손을 들었다.


"삐삐 삐삐, 삐익"


문을 여니 어김없이 맞이하는

암흑과 적막함.

외로움과 마주할 때면,

핸드폰은 머릿 속을 가득 채운 사람을 찾아낸다.

 

"잘 들어갔어요?"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톡을 날리나.

번개같이 쓰여진 글자를 보내려는 찰나,

딱 5분만 있다 보내자란 생각이 든다.


뭐 하며 5분을 때울까 고민하다,

기웃거리는 내 방 안.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몇 장의 A4용지들.

전쟁 같은 출근이 남긴 흔적을 지워본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단 말이 있다.

정리하다 보니 점점 분류하기 시작하는 나.

이 옷 입은 그 남자 앞에선 절대 안돼

저 옷은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 듯싶다, 

이건 언제 한번 시도해 볼까나.

오지랖이 풍년인가, 

회사서류들을 정리하다 보니

언제쯤 나도 그가 하는 업무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싫지 않은 콩깍지는

세상이 아닌,

세상을 보는 나를 바꾼듯하다.


아이쿠,

이런저런 생각에 쫓기다 보니

나와 약속한 5분을 훌쩍 넘겼네.

그리고 이미 와 있는 그이의 까똑.


"잘 들어가셨죠?

오늘 유미 씨와 맛집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시간 보내서 좋았어요."


자꾸 선수를 치는 이 남자.

능숙해 보이는데 자꾸 끌린다.

부담스럽지 않게 적극적인 이 남자.

왠지 나에게 딱 인 것 같다.  


자, 이제 꽁냥꽁냥 답장을 써볼까나.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한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이전 에피소드 목록이며,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봐도 재밌을 듯싶습니다.


1편 - #1_'하다'는 것

2편 - #2_'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

3편 - #3_오작동! 내 이성적 사고회로

4편 - #4_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5편 - #5_설레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6편 - #6_넌, 이런 내 맘 알까?

7편 - #7_너라는 우주에 첫걸음

8편 - #8_시나브로 길들여지기

9편 -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10편 - #10_보통여자? 내게는 다른 걸

11편 - #11_이 밤의 끝자락

12편 - #12_갈피와 타이밍

13편 - #13_참 묘한 '첫 통화'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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