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통남자, 알면 알아갈수록...
士내女내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아니 이게 무슨 재미없는 말인가.
잔뜩 기대했던 블록버스터 영화의
삼류 티저영상을 봐버린 느낌?
이 남자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서 그랬나?
기대치는 날개를 잃어 추락했지만
우선은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친구들한테 인기는 없었고
주로 동성친구들하고 놀았죠.
반에서도 딱히 주목받는 존재는 아녔어요."
참, 그러고 보니 나도 뭐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과는 달리 공부 삼매경에 빠졌던 나.
놀림받진 않았지만 소위 '범생이'라는 말도 듣던 나였다.
"대신 라디오와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글 쓰는 것도 좋아하구요."
이 남자,
중학생 때부터 음악파일 모으기가 취미였단다.
좋아하는 장난감과 스티커들을 수집하듯
당시 유명했던 음악들의 시디를 모았댄다.
유행했던 몇몇 노래들은 전주 몇 초만 들어도
알아맞힐 정도로 익숙하며
고등학생 때부터 절친이 된 라디오는
지금도 매일 듣는단다.
비록 지금은 한낱 미생이지만
언젠가 작가와 라디오 디제이가 되리라는
당차고도 재미난 꿈도 꾸고 있다.
공부 외엔 관심 없던 나.
무심코 지나쳐왔던 것들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며
이 사람이 살았던 과거는 신세계로 다가왔다.
특별하게 살고자 했던
나의 과거가 평범해 보이고,
평범해도 괜찮다 살아왔던
이 남자의 과거가 특별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유미 씨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잠시 회상에 잠겨있는 동안
갑자기 날아들어온 기습질문
충분히 던질만했지.
근데 이게 웬,
묵직한 돌직구 같은 느낌.
"저도 평범했던 것 같아요."
아마 내 대답은 달랐을 거다,
이 남자를 만나 이런 대화를 하기까진.
"그저 공부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롤모델이 위풍당당 커리어 우먼이었거든요.
H.O.T나 젝스키스 아시죠?
친구들이 다 오빠~ 오빠 하며 따라댕길 때도
저는 뚝심 있게 공부만 했어요. 하하."
아놔, 내 입으로 얘기해놓고도 민망하다.
과거 학창시절이라는 단면 하나가
나라는 모든 입체를 정의 내릴까 봐도 두렵다.
"평범하지 않은데요.
공부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열심히 한 거잖아요.
유미 씨는 지금 가족분들과 친구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직장인이고,
지금의 이런 유미 씨를 만들었기에
그 과거도 함께 빛나는 거 같아요.
어렸을 적의 유미 씨,
왠지 귀엽기도 했을 거 같은데요?"
심쿵, 심장이 쿵쾅쿵쾅.
뭐 그리 특별한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한순간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유별나지 않되 특별한 사람.
말 한마디의 힘이 이리 큰 것인지
아님 이 사랑의 힘이 대단한 것인지
심장은 요동쳤고
학창시절의 난,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혹시 어렸을 때 사진 있어요?
보고 싶어요."
"뭐, 막 예쁘지는 않았지만
나름 귀엽기는 했던 거 같아요.
아, 이거 보여주려니까 쑥스럽네요."
만지작만지작,
어렸을 때가 뭐라고 제일 잘 나온 사진을 골라본다.
하나 둘 셋,
그에게 보여줄 사진을 고르고 선별하는데 이상하다.
예전에 봤을 땐 이리 귀엽지 않았었는데
나름 진짜 괜찮아 보인다.
미친 용기가 차오르며 어렸을 적 사진을 빼꼼 내밀어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저 본 내용을 궁금케 만드는 티저라 보면 된다.
내가 앞으로 너에게 보여주고픈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정신없이 웃고 떠드는 사이
식당 안은 우리처럼 시끌벅적 해졌다.
환했던 해님은 행운을 빌며 자취를 감추고,
므훗한 달님이 흐뭇하게 우릴 지켜보는 이날 밤.
그와 나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서로를 더 알아갔다.
그렇게 시나브로, 하루는 저물어갔다.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아홉 번째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이전 에피소드 목록이며,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봐도 재밌을 듯싶습니다.
1편 - #1_'쿨하다'는 것
2편 - #2_'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럼
3편 - #3_오작동! 내 이성적 사고회로
4편 - #4_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5편 - #5_설레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6편 - #6_넌, 이런 내 맘 알까?
7편 - #7_너라는 우주에 첫걸음
8편 - #8_시나브로 길들여지기
9편 - #9_보통남자? 보통이 아닌 듯
10편 - #10_보통여자? 내게는 다른 걸
11편 - #11_이 밤의 끝자락
12편 - #12_갈피와 타이밍
13편 - #13_참 묘한 '첫 통화'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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