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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Dec 17. 2016

#17_돌려주기 싫은 너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언제 어떻게 건네느냐


사진출처_버버리


士내女내 #17_돌려주기 싫은 너


"인사 해, 여긴 우리 팀 이규민 대리.

최근 입사한 친구야."


"대리님 안녕하세요.

2팀 한유미 대리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내 아무리 그와 출퇴근도 같이 하고

따로 연락도 주고받으며

심지어 데이트까지 했지만,

회사 직원들에게는 그저

인사 한 번 못한 옆 팀 직원일 뿐.


그이와 내가 아직

회사 내 우리는 '어떤사이'라고

입을 맞춰보지 않은 이상,

사내에서의 우리 관계는

현실과 다른 이상적인 비밀,

환상의 로맨스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3팀 이규민 대리입니다."


난 분명 봤다.

고개를 숙이다 살짜악

못 참고 올라가

그의 순수하고 훈훈한 입꼬리를.


"이규민 대리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이렇게 다른 팀과 회식도 해.

그게 점심이든 저녁이든,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니

부담 느끼지 않았으면 하네."


이런 회식이 처음이 아닐 거라는

유 부장님의 예고.

옆에서 경청하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는

의 속내가 사뭇 궁금해진다.


'이 상황이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배고픈데 그냥 밥이나 먹자.'


이거 원 밥이 잘 넘어가려나.

무슨 단체 소개팅도 아니고

서로 마주 보며 앉은 양 팀원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규민 씨,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밥 맛나게 드세요^^"


라고 그에게 까똑을 보냈다.

마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똑을 보냈으리라

이 자리의 누가 상상이나 할까?


"고마워요 ^^ 유미 씨도 개의치 말고 점심 맛있게 먹어요"


크흠, 아무렇지 않게 헛기침을 한 후

착석한 자리마다 수저를 놓으려는 찰나,


"아니에요, 대리님. 제가 할게요."


수민 씨가 가로막았다.

여섯 중 서열이 가장 낮은 수민 씨.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한 분 한 분씩 수저를 놓는데... 뭐지?

그이 앞에 놓는데 조금 더 웃었다.

허허 이것 보소,

다 웃으면서 놓아드린 수저인데

손놀림은 그이 앞에서 더 느렸고

불필요한 말까지 덧붙인다.


"여기요~~"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 하지 않나?

날카로운 내 촉이 킁킁,

흔들리는 꼬리를 잡은 듯하다.


"수민 씨 고마워요~

물은 내가 따를게."


"아니에요 대리님 물도 제가 따라야죠."


"그 가녀린 팔로 괜찮겠어?

최근 손목도 다쳤다던데 내가 할게 :)"


순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나보다 어리고 이쁜 여자 후배가

그이한테 물까지 주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나 참 물 한 컵이 뭐라고...


"이 대리는 집이 어느 쪽인가?"


"강변 쪽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 여기 한유미 대리도 집이

강변이라고 한 것 같은데?"


"네 부장님 맞아요, (괜한 것을) 기억하시네요.

저도 강변 쪽이에요."


"허허, 그럼 둘이 길이 겹치겠구먼.

비슷하게 퇴근하면 같이 가도 되겠어."


"어휴 부장님, 오늘 처음 인사한 분들한테

무슨 말씀이세요? ~ _~ 부담스러우시겠다."


"아! 강변이긴 한데 집 가는 길은 달라요!"


아차...! 실수했다 ㅠ_ㅠ


"으응? 이대리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


"음... 그러니까 제 말은 강변 하면 되게 넓잖아요.

테크노마트도 있고 아파트들도 많고...

제 말은 설마 사는 동네까지 겹치겠냐?

그럴 가능성은 엄청 희박할 것 같아서요."


"에이, 은근히 대한민국 사회 좁아.

사람도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거,

사는 동네도 겹칠 수 있지 뭐.

안 그래 이대리?"


빨개진 두 볼과 벙찐 표정의 그.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추스르며

겨우 내뱉은 한마디,


"저도 유미 대리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아직 출퇴근길에 대리님을 못 뵌 것 보면,

분명 거리가 꽤 있는 것 같아요."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오장육부가 떨려

파스타가 목구녕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여우 수민 씨가 규민 대리에게

미소를 날리는지 꼬리를 흔드는지

식은땀이 나 확인조차 못하겠다.


한 번의 실수에 위축되어

말없이 계속 파스타만 둘둘,

또 한 번 포크로 말아 감는데

지이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운다.


"유미 씨 괜찮아요?

식은땀이 나는 거 같으신데 어디 아픈 건 아니죠?ㅠㅠ

유미 씨 앞에 제 손수건 놔뒀으니 편하게 써요 ^-^"


빼꼼~ 살짝 든 고개에 보이는 작은 손수건 하나.

차오르는 감동에 손수건을 집고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들을 닦아냈다.


"엇 대리님 이거 처음 보는 손수건이네요.

디자인 되게 예쁘다~

누구한테 선물 받으신 거예요?"


"음.. (살짝 고개를 돌려 그이와 눈을 맞춘 후)

응 맞아, 되게 괜찮은 남자한테서 선물 받았어. 이쁘지?"


"와 부럽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분 센스 넘치시네요."


그때부터였다.

그의 손수건으로 닦아낸 건 땀방울만이 아니었다.

실언에 가득 찬 긴장감과 스트레스마저 몰아냈다.

내가 먹고 있던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고

맛도 기분도 좋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이 작은 손수건 하나가 뭐라고,

누가 주느냐, 어떤 마음으로 언제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값지고 특별하고 남다르다.


그 날 그렇게 받은 첫 선물.

좋아하는 그이로부터 돌려주기 싫은 물건을 받았다.


근데 이거 안 돌려줘도 되는 것 맞겠지...?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일곱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전 에피소드 목록은 士내女내 매거진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전 이야기와의 긴 공백이 말해주듯, 본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과정은 수월하지 못했습니다ㅠㅠ 매번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막히고 막히다가 드디어 짜낸 이야기가 나왔네요. 필자 스스로의 기준 언저리를 찝찝하게 통과한 본 이야기지만 또 다른 좋은 이야기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추버요. 필자는 요 며칠을 감기와 씨름 중이지만, 독자 여러분들께는 건강한 겨울나기가 되길 바랍니다 :)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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