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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피파 May 05. 2017

#18_되게 괜찮은 남자

아직 이르지만 그때부터였다


士내女내 #18_되게 괜찮은 남자


'쿵쿵 쿵쿵'


설레어서든 당황해서든

크게 뛰는 심장은 우선 진정시켜야만 한다.

쿵쾅거리는 소리에 

정작 들어야 할 밖의 소리를 놓쳐선 안 되니까.


"어 유미 대리~ 인사 해, 여긴 우리 팀 이규민 대리.

최근 입사한 친구야."


"대리님 안녕하세요.

2팀 한유미 대리입니다."


유 부장님의 소개에 뒤따른 그녀의 인사.

약속이 있다던 그녀의 얼굴에 보이던

약간 당황한 기색.

허나 그 누구라도 예측했겠나,

이틀 전 주말,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던 남녀가

곧 회사 동료들과 섞여 점심을 먹어야 하다니 말이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3팀 이규민 대리입니다."


아 이 미련한 바보...

좋아하는 그녀 눈을 보고 인사할라니 

나도 몰래 너무 밝게 웃으며 인사해버렸다.

무엇 하나라도 꼬리를 잡히면 큰일 나는 이 한 시간.

꼬리의 존재 자체도 숨겨야 할 내가 

살랑살랑 신호를 노출할 뻔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비슷한 정도의 미소와 밝음으로

옆팀 송 부장님과 수민 씨에게도 인사했다.

그런데 가만 수민 씨, 나한테 왜 그리 환하게 인사하지? 

그래 이건 괜한 기분 탓인 거 같다.


"이규민 대리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모르겠지만

우리 팀은 이렇게 다른 팀과 회식도 해.

그게 점심이든 저녁이든,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니

부담 느끼지 않았으면 하네."


뭐라고? 이런 예측 불가능한 전개의 식사가 

앞으로도 불규칙하게 있을 것이라니.

아니다, 경청하며 듣다 보니 이것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

자주 부딪힐 사람들 중

가까운 적군과 아군을 가릴 기회 말이다.


현재 진행 중인 비밀 로맨스에 있어,

내 편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에 대한 구분은

정말 중요하다.

한번 겪어봐서 더더욱 잘 안다.


식당 입구에 도착했다.

회식이든 일반 모임이든

자리배치가 중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이 더더욱 그런 때다.

그녀와 마주 보며 먹고 싶었던 이유도 있지만,

그녀에게 오가는 말들을 놓치기 싫었던 이유도 크다.


다행히 양 팀 부장이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됐고,

내 팀 정 과장과 수민 씨는 가운데 자리서 마주 봤고,

나와 유미 씨는 끝자리에서 서로를 향했다.


'지이잉' 울리는 폰에 도착한 그녀의 까똑.


 "규민 씨,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밥 맛 나게 드세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어서 보낸 건가?

이유야 어쨌든, 그녀의 따뜻한 까똑이 기분 좋았다.


"고마워요 ^^ 유미 씨도 개의치 말고 점심 맛있게 먹어요

(자리 배치도 성공적이니까요)"


수민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있는 수저통까지 겨우 팔을 뻗었다.

힘겨워보이던데 굳이 저러는 걸 보니,

역시 막내라는 서열의 무게는 참 가볍나 보다.


"여기요~~"


출신 모를 애교 섞인 목소리.

듣기에 불편한 정도까진 않은데,

내 앞의 유미 씨가 뭔가 신경 쓰인다.

그래서 쓰으읍, 불필요한 웃음을 힘껏 참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식사가 한창.

아니나 다를까, 상사의 질문이 날아왔다.


"이 대리는 집이 어느 쪽인가?"


"강변 쪽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 여기 한유미 대리도 집이

강변이라고 한 것 같은데?"


결국 나오고야 말았다.

시험 대비 기출문제를 풀면서도

이 문제만큼은 꼭 안 나왔으면 하는 게 있다.

이미 풀고 오답까지 맞춰보았어도,

실전에서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그런 질문이 있다.

위 질문이 바로 딱 그거다.


"네 부장님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저도 강변 쪽이에요."


"허허, 그럼 둘이 길이 겹치겠구먼.

비슷하게 퇴근하면 같이 가도 되겠어."


아하하하... 

그래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가나 보자 

우선 지켜보자꾸나.


"아! 강변이긴 한데 집 가는 길은 달라요!"


유미 씨? 방금 뭐라고 하신 거지? 

이 분들은 유미 씨가 제 집을 알고 있는지 모르잖아용ㅠㅠ 


"으응? 이대리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


"음... 그러니까 제 말은 강변 하면 되게 넓잖아요.

테크노마트도 있고 아파트들도 많고...

제 말은 설마 사는 동네까지 겹치겠냐?

그럴 가능성은 엄청 희박할 것 같아서요."


"에이, 은근히 대한민국 사회 좁아.

사람도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거,

사는 동네도 겹칠 수 있지 뭐.

안 그래 이대리?"


설마 내 차례가 오겠어

넋 놓고 듣고만 있다 갑자기 날아왔다.

뻔하지만 기습질문


"저도 유미 대리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아직 출퇴근길에 대리님을 못 뵌 것 보면,

분명 거리가 꽤 있는 것 같아요."


민망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누군가 팩트체크를 하기 전까지는

시치미 뚝!

그녀와 나는 서로의 집 위치도 모르고

거리도 꽤나 있는 집에 산다.

이게 대외적인 팩트다, 체크당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답을 얼버무린 뒤,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쳐다봤다.

방금 저질렀던 순간의 말실수 때문인가,

초조해 보이는 그녀 안색이 안쓰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유미 씨 괜찮아요?

식은땀이 나는 거 같으신데 어디 아픈 건 아니죠?ㅠㅠ

유미 씨 앞에 제 손수건 놔뒀으니 편하게 써요 ^-^"


이런 경우를 위해 준비해 놓은 손수건.

남들 시선을 피해 몰래 꺼내어 그녀 앞에 놓았다.

손수건아 정말 고맙다.

그녀가 널 보고 입가에 띄운 미소가 정말 예쁘네.


"엇 대리님 이거 처음 보는 손수건이네요.

디자인 되게 예쁘다~

누구한테 선물 받으신 거예요?"


옆자리의 수민 씨가 매의 눈으로 포착.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음.."


그녀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던 차,

그녀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맞췄다.


"응 맞아, 되게 괜찮은 남자한테서 선물 받았어. 이쁘지?"


되게 괜찮은 남자.

손수건 하나로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을 들을 줄 몰랐다.

마음씨가 정말 따뜻한 것인지, 

아니 그녀도 나처럼 호감이 있는 것인지.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그때부터였다.

이 작은 손수건 하나가 뭐라고

작은 것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그녀에게, 

앞으로도 조금씩 더 해주고픈 마음이 들었던 것이.


그리고 말할까 말까?

그 손수건 돌려줄 필요 없어요 라고...



본 에피소드는. 한창 연재를 진행 중인 로맨스 소설 '士내女내'의 열여덟 번째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그 어떤 짤막한 공지도 없이, 이전 에피소드로부터 무려 5개월 하고도 반개월을 더해 휴재를 하고 말았네요.  士내女내를 1회부터 재밌게 읽으셨던 분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ㅠ_ㅠ 사실 잠깐이나마 설명을 드리자면, 휴재를 하기에 앞서 어느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정규직으로는 두 번째 회사생활을 시작해버렸습니다. 기다려온 이직에 성공해 오랜만에 월급을 받기 시작한 것은 기뻤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빈번한 야근에 저녁 삶은 없고, 지쳐가는 심신에 써 내려가기 힘들었던 제 애틋한 士내女내에 대한 마음은 크나큰 짐이었습죠ㅠ.ㅠ 


하지만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품어온 꿈입니다. 아직 가시적으로 이룬 것은 없지만, 만나는 그 어떤 이들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작문을 좋아합니다. 작가는 제 꿈이고 그 누구도 대신 이루어 줄 수 없기에, 이렇게 늦은 새벽 다시 힘을 내어 이 소설을 다시 이어가 보고자 합니다. 한 달에 평균 세 편을 써 내려갔던 작년에 비해 손놀림은 다소 느릴 수 있지만, 구상했던 큰 그림은 아직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쉬었던 만큼 다시 힘을 내어 이어가 보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이전 에피소드 목록은 士내女내 매거진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전편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차례대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퍼피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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